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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수호’ … 남편 이름으로 눈시울 붉힌 최은영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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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이 배로 다시 태어난 남편을 뒤로 두고 서 있다. 그는 27일 ‘한진수호’호 명명식에서 남편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수호’란 이름은 최 회장의 남편 고(故) 조수호 회장의 이름을 딴 것이다. [사진 한진해운]

“나는 이 배를 ‘한진수호’호로….”

 떨리던 최은영(50) 한진해운 회장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최 회장을 지켜보던 100여 명의 한진 가족도 함께 숨을 삼켰다. 30여 초쯤 흘렀을까. 큰 숨을 한번 들이켠 최 회장은 “명명하나니 이 배와 승무원 모두에게 신의 축복과 가호가 깃드소서”란 명명사의 나머지를 읽어 내렸다. 모처럼 쨍하고 내리쬔 봄햇살에 최 회장 눈가에 맺힌 이슬이 반짝였다.

 한진해운은 27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컨테이너선 두 대의 명명식(이름을 정하고 안전운항을 기원하는 행사)을 열었다. 최 회장은 보통 한 해 1~5척의 신조(新造) 명명식에 참가하지만 이날 행사는 각별했다. 이름을 얻은 배가 국내 선사가 보유한 최대 규모(1만3100TEU)의 컨테이너선인 데다, 남편인 고(故) 조수호 회장의 이름을 땄기 때문이다. 명명식에서 배의 이름을 붙이는 선주 측 여성을 천주교 세례에 빗대 ‘대모(godmother)’라 부르는데 이날 명명식으로 최 회장은 조 회장의 아내에서 대모로 거듭난 셈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여동생의 딸인 최 회장은 전업주부로 지내다 2006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의 뒤를 이어 2007년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 그런 최 회장에게 ‘한진수호’호는 남편 이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최 회장은 올해를 ‘흑자전환’의 해로 선포했다. 바람 잘 날 없었던 지난 4년을 딛고 올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한진해운이 세계 톱10, 국내 1위 선사로 도약하는 초석을 다진 남편의 ‘가호’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최 회장이 한진해운을 맡은 지 1년여 만에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졌고 2009년 해운업계는 사상 유례없는 불황에 빠졌다. 최 회장은 전문경영인인 김영민(57) 사장과 함께 위기를 극복하며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유가 급등과 선박 과잉공급에 따른 운임하락으로 지난해 적자를 기록했다.

 최 회장은 올 들어 자주 현장을 찾으며 위기 돌파를 위한 의지를 거듭 보이고 있다. 독일의 한진해운 유럽본부를 비롯해 영국과 스위스 등의 유럽 지사와 주요 파트너사를 직접 찾아 협조를 요청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최대 규모의 한진수호호가 명명식을 마치고 다음 달 1일 출항을 앞두게 됐다. 최 회장이 밝힌 흑자전환의 의지가 한진수호호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셈이다.

 이날 명명식에선 한진수호호 외에 한진해운이 빌려 쓰는 용선 ‘한진아시아’호도 탄생했다. 같은 급의 두 배는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380m) 높이에 맞먹는 초대형 선박으로 20피트 컨테이너 1만3100여 개를 실을 수 있다.

김영민 사장은 기념사에서 “세계 해운시장에 변화와 도전이 필요한 이때에 한진해운을 세계적 선사로 이끌었던 고 조수호 회장의 혜안과 숭고한 뜻은 우리에게 큰 지침이 되고 있다”며 “이번 세계 최대 규모 선박 투입과 함께 고객으로부터 신뢰받는 세계 최고의 종합물류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TEU(Twenty-foot Equivalent Units) 가로 20피트(6.1m), 폭 8피트(2.44m), 높이 8.5피트(2.6m)짜리 컨테이너 박스 1개를 이르는 단위로 컨테이너선의 적재 용량을 표시할 때 쓰인다. 1만 TEU 이상이면 대형 컨테이너선으로 분류되는데 이번에 한진해운이 출항시키는 ‘한진수호호’는 1만3100TEU급으로 국내 선사가 보유한 컨테이너선 중 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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