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세상] 이문구씨의 속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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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런거지 뭐. 안 그려? 요릿집 옆골목에 콩너물 장수도 있구, 제과점 뒷골목에 붕어빵 장수도 있구, 아 그래야 사람 사는 세상 안 같겄남" (중략) "그래라. 누가 말려.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가는 데까지 가보자 이거여. "

올해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이문구씨의 소설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있거나 걸어왔다' 중 '장평리 찔레나무'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렇게 말싸움으로 서로의 엇갈림을 풀면서 소설 속 부부는 함께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씨 소설의 특장은 문체에서 나옵니다.

능청스러운 충청도 사투리는 절로 웃음이 나오게 합니다.

'냅둬' 라며 자신을 의뭉스레 숨기면서 하고 싶은말 다하며 쏘아붙이지만 결국 속 좋은 제과점 아저씨 붕어빵 아줌마 끌어안듯 하는 게 이씨 소설의 글맛이며 미덕이지요.

심사위원들도 "강한 부정이 스스로 강한 긍정이 되고 뜨거운 비판이 스스로 맹렬한 의지로 솟구치는 변증법적 원융(圓融)의 세계" 라고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상 수상을 놓고 이씨는 일부 후배 문인들로부터 적잖은 공격도 받고 있습니다.

"진보적 문학단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으로서 보수언론에서 주는 상을 받을 수 있느냐" 며 일간지 칼럼 등을 통해 비난하고 있으니 이씨는 지나온 삶과 문학에 적잖은 회환이 들겠지요.

글동네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본인도 스스럼없이 밝히고 있듯 이씨는 민족문학의 반대 진영인 순수문학의 거두 김동리의 둘도 없는 제자입니다.

1970년대 김동리의 막강한 문단 권력 우산 아래서 이씨를 위시한 젊은 민족문인들이 자라나 자유실천문인협의회로, 다시 오늘의 민족문학작가회의로 발전한 것은 아닙니까. 그리고 이제 민족.순수 문학의 벽을 허물자고 경향과 파벌을 초월해 포괄적 문단 활동을 펴온 이씨를 이사장에 올린 것 아닙니까.

'변증법적 원융' 이란 어떤 세계입니까. 이 세계 저 세계 다 거치고 살피면서 결국은 모든 세계를 거리낌없이, 구분없이 한데로 통하게 하는 경지 아니겠습니까. '이 풍진 세상을' 에서 '우리 동네' 를 거처 '유자소전' 으로 죽 이어지는 이씨의 소설은 하찮은 삶에도 이유를 주고 그렇다고 힘 있는 삶도 죽도록 내치지 않으며 함께 인간답게 잘 사는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문학은 시대와 기질에 따라 배타성도 마땅히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이씨의 삶과 문학은 그 기질상으로 배타적이기보다 포괄적입니다.

후배들의 질타대로 자신의 입지를 생각했더라면 이씨는 당당히 수상을 거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씨는 자신의 삶과 문학의 포괄적 일관성을 택한 것 같습니다.

"요즘 심경이 어떠냐" 는 질문에 예의 "냅둬" 만 되풀이 하는군요. '원만한 지조' 를 위해, 한국문학의 깊이와 원융을 위해 이씨의 선택에 대한 비난은 이제 그만 냅둘 수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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