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냄새 서린 기녀들의 시 '기생시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미 선학들의 지적도 있었지만, 나는 기생들이 남긴 시가가 우리 문학의 정채(精彩)중 하나라는 데 완전히 동의한다.

따라서 '어져 내일이야 그릴 줄을 몰랐더냐/이실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어/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던 황진이의 시구 하나 정도를 알지 못하는 것은 불행이라고까지 단언한다.

시는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읊조리는 것이라는 '기본' 을 생각한다면, 동서고금 애송에 가장 적당키로는 인간의 내밀한 속내를 드러낸 시들이란 것을 인정한다면, 조선시대 기생들이 남겨준 유산들은 정녕 귀하지 않을 수 없다.

'소실과 시기(詩妓)들의 시에는 감정을 거짓한 흔적이 없다' 던 김안서의 평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문정희 시인이 공들여 엮어낸 이 책은 여간 반갑지 않다.

비단 기생들의 시뿐만 아니라 화담 서경덕이나 백호 임제 등 당대 문사들이 기생에게 바친 글들을 함께 모아 놓은 점 또한 썩 괜찮은 발상이다.

앞서 황진이의 시조를 생각하며 서화담의 이 글을 읽어보자.

'마음이 어린 후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만중설산에 어느 님 오리마는/지는 잎 부는 바라메 행여 긴가 하노라' .

이런 글들로 채워진 시집, 늦가을에 딱 어울리지 않는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