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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조력자, 유교 능통한 지식인 … 우리가 몰랐던 인수대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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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JTBC 주말사극 ‘인수대비’에서 인수대비 역을 맡아 열연 중인 채시라.

JTBC 주말사극 ‘인수대비’(토·일 오후 8시45분)가 인기다. 채시라가 연기하는 인수대비의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그간 소설·영화·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트로 만들어진 인수대비의 실체를 알아본다.

 태조 이성계로부터 숙종대까지의 야사(野史)가 집대성된 『연려실기술』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대목은 단종과 수양대군, 연산군과 중종에 관한 기록이다.

 『연려실기술』의 야사 전통은 식민지 시대 역사소설가들에게 계승됐다. 이광수·김동인·박종화는 각각 『단종애사』 『대수양』 『금삼의 피』를 썼다. 『단종애사』는 단종을 피해자로, 수양대군을 찬탈자로 묘사했다. 『금삼의 피』에서는 연산군과 폐비 윤씨가 피해자로, 인수대비가 가해자로 그려졌다. 반면 『대수양』은 수양대군을 뛰어난 정치가로 미화했다. 식민지 시대에는 『단종애사』와 『금삼의 피』가 인기를 끌었다. 일제의 압박에 시달리던 조선사람들은 단종과 폐비 윤씨의 슬픔에서 동병상련을 느꼈다.

 이 같은 역사소설은 해방 이후 영화로 제작된다. 1956년 전창근 감독의 ‘단종애사’를 필두로 신상옥 감독의 ‘연산군-장한사모편’과 ‘폭군 연산-복수, 쾌거편’, 이혁수 감독의 ‘연산군’, 임권택 감독의 ‘연산일기’ 등이다. 90년대 제작된 TV 사극에서는 수양대군의 진취적 측면과 궁중여성의 적극적인 역할이 강조됐다. ‘한명회’와 ‘왕과 비’는 수양대군을 탁월한 정치가로 묘사했고 ‘장녹수’에서는 아예 궁중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JTBC 주말사극 ‘인수대비’ 화제

이런 경향은 2011년 JTBC ‘인수대비’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 여성들의 활동영역이 급속도로 확대된 시대 속에서 폐비 윤씨를 쫓아낸 비정한 시어머니로만 인식되던 인수대비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인수대비는 추존왕 덕종의 왕비다. 소혜왕후라고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인수대비, 성종의 생모, 연산군의 할머니로 유명하다. 『내훈』을 써서 여성들을 유교 윤리로 옭아맨 주범으로 비난받기도 한다.

 인수대비는 왜 왕비보다 대비로 더 유명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왕비였던 적은 없고 대비로만 오래 살았기 때문이다. 『내훈』을 쓰고 연산군의 생모를 사사(賜死)시켰던 것도 그가 대비였을 때 일어났다.

 세종 19년(1437)에 한확의 딸로 태어난 인수대비는 15세 되던 문종 1년(1451)에 수양대군의 큰며느리가 됐다. 몸소 시부모의 음식을 마련했고, 시부모의 곁을 늘 지켰다. 당시 수양대군은 한명회·권람 등과 쿠데타를 도모하고 있었다. 인수대비는 그 쿠데타에 음양으로 간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단종 3년(1455)에 수양대군은 단종의 선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고 19세의 인수대비는 세자빈이 됐다. 하지만 21세 되던 해에 세자가 죽어 궁궐 밖으로 나와야 했다. 그러나 시동생인 예종이 일찍 승하하고 둘째 아들 성종이 왕이 되자 33세의 나이에 대비의 자격으로 다시 입궁했다. 이후 당대의 정치와 문화를 좌우했다.

 인수대비는 유교경전에 능통한 지식인이었다. 윤리와 도덕을 중시하던 원칙주의자였다. 자녀들이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감싸주지 않고 바로 꾸짖어 폭빈(暴嬪)이라 불릴 정도였다. 대비가 된 후에도 며느리들을 엄격하게 가르치다가 폐비 윤씨를 사시시키기까지 했던 것이다. 인자함이 부족했던 인수대비는 말년에 연산군에게 냉대를 받다가 연산군 10년(1504) 4월 27일에 68세로 세상을 떠났다. 자녀는 월산대군·성종·명숙공주를 두었고, 무덤은 경릉으로서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에 있다.

신명호 교수(부경대·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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