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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얼마나 무력한가, 미크로네시아서 깨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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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크로네시아 축(Chuuk)주의 환초는 태평양에 뜬 목걸이처럼 보인다. 그 둘레는 224㎞다. 해저의 화산폭발로 융기된 고지가 물밑으로 가라앉고 그 가장자리에 엉겨 붙은 산호의 군락이 수면 위에서 거대한 테를 이루고 있다. 원양의 파도가 환초에 부딪혀서 깨진다. 포말의 목걸이는 낮에는 하얗게 햇빛에 빛나고, 저녁에는 붉은색에서 군청색으로, 군청색에서 어둠 속으로 잠긴다. 이 해역은 서쪽으로 불어가는 몬순과 동쪽으로 몰려가는 무역풍 사이에서 무풍지대를 이룬다.

미크로네시아 축(Chuuk)주의 환초는 태평양에 뜬 목걸이처럼 보인다. 그 둘레는 224㎞다. 해저의 화산폭발로 융기된 고지가 물밑으로 가라앉고 그 가장자리에 엉겨 붙은 산호의 군락이 수면 위에서 거대한 테를 이루고 있다. 원양의 파도가 환초에 부딪혀서 깨진다. 포말의 목걸이는 낮에는 하얗게 햇빛에 빛나고, 저녁에는 붉은색에서 군청색으로, 군청색에서 어둠 속으로 잠긴다. 이 해역은 서쪽으로 불어가는 몬순과 동쪽으로 몰려가는 무역풍 사이에서 무풍지대를 이룬다.

나는 지난 2월 중순에 7일간 미크로네시아 연방의 섬들을 여행했다. 미크로네시아 연방은 괌과 뉴기니 사이의 방대한 해역에 흩어진 600여 개의 섬과 주민들을 아우르는 연방국가다.

  1519년에 마젤란은 신혼의 처자식을 딱 잘라버리고 5척의 선단으로 출항했다. 선원은 270명이었는데, 9개 나라에서 끌어모았다. 사내들은 돛 폭 끝에 붙은 가죽을 뜯어먹으면서 태평양을 건너갔다.

  1521년 3월에 마젤란 함대는 처음으로 이 미크로네시아 해역에 진입했고 그로부터 300여 년 뒤에 피츠로이 선장의 비글호는 이 해역의 남쪽을 멀리 돌아나갔다. 나는 비행기를 타고 미크로네시아에 다녀왔다.

교회에 가는 소녀들과 마주쳤다. 누구나 길에서 마주치면 환한 인사를 건네왔다. 모계사회인 축주는 여성의 목소리와 권한이 드높다.

돌아와서 책상 앞에 앉았다. 연필을 들면 열대의 숲과 바다가 마음속에 펼쳐진다. 숲을 향해 할 말이 쌓인 것 같아도 말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들끓는 말들은 내 마음의 변방으로 몰려가서 저문다.

  숲속으로 들어가면 숲을 향해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태어나지 못한 말들은 여전히 내 속에서 우글거린다. 열대의 숲은 ‘사납고 강력하다’라고 써봐도 숲과는 사소한 관련도 없다. 열대의 숲은 사납거나 강력하지 않고 본래 스스로 그러할 뿐이다.

  나는 사전에 실려 있는 그 많은 개념어들의 상당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다. 겨우 그 뜻을 짐작하는 단어도 고삐를 틀어쥐고 부리지는 못한다. 그 단어들은 낯설어서 근본을 알 수 없고 웃자라서 속이 비어 있다. 말이 아니라 헛것처럼 느껴진다.

한·남태평양 해양연구센터의 식당에 바나나 가지를 매달아 놓았다. 바나나가 익어가고 사람들이 바나나를 다 먹어갈 무렵, 누군가 다시 안 익은 바나나 가지를 잘라다 그 옆에 매달아 놓았다. 바나나가 익는 시간처럼 그곳의 시간은 유난히 달큼하다.

열대밀림 속에서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 말은 허망해서 그야말로 무위하다. 열대 밀림은 동양 수묵화 속의 산수가 아니다. 열대밀림은 인문화할 수 없고 애완할 수 없는 객체로서의 자연이다. 그 숲은 인간 쪽으로 끌어당겨지지 않는다. 자연은 그윽하거나 유현(幽玄)하지 않다. 자연은 작용으로 가득 차서 늘 바쁘고 인간에게 적대적이다. ‘무위’는 자연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손댈 수 없는 인간의 무력함을 말하는 것이라고 열대의 밀림은 가르쳐주었다. 높은 나무들의 꼭대기까지 잎 넓은 넝쿨이 감고 올라갔고 나무와 넝쿨이 뒤엉켜 비바람에 흔들렸고 덩치 큰 새들이 짖어댔다.

  한국해양연구원 산하의 한·남태평양 해양연구센터(KSORC·센터장 박흥식 박사)는 축(Chuuk) 주의 바닷가에 있다. 한국의 젊은 과학자들이 거기서 해양생태환경을 연구하고 바다 쪽으로 산업의 영역을 넓힐 궁리를 하고 있다. 나는 그 연구소에서 숙식했다.

한·남태평양 해양연구센터의 김도헌 과장은 축주의 원주민과 결혼해 가정을 이루었다. 그의 장모인 시삼(77) 여사는 징용에 끌려온 한국인들은 농사짓기를 좋아해서 텃밭을 일구어 한국에서 가져온 호박·감자·가지의 씨앗을 뿌렸고, 봉숭아와 맨드라미를 심었다고 회상했다.

축은 225km의 원형환초로 둘러싸여서 대양 속의 호수와 같다. 그 안에 80여 개의 화산섬이 흩어져 있다. 환초 안은 수심이 40m 정도지만 환초 밖은 1000m가 넘게 깊어진다. 섬 둘레의 물가에 잘피 숲이 우거져 있고, 그 수초의 이파리 사이에서 온갖 기묘한 무늬를 가진 작은 물고기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물안경과 호흡기를 쓰고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작은 물고기들의 나라는 꿈속 같았고, 이 세상이 아닌 세상이었다. 물고기가 이동할 때 몸의 색깔은 산호와 수초의 색깔에 맞게 변해갔다. 그것들의 무늬와 생김새는 하늘의 별보다도 더 다양했고, 그것들의 몸놀림은 정(靜)과 동(動) 사이에 경계가 없었다. 영롱하고 발랄한 생물들이었다.

  “물고기들은 왜 저마다 저러한 무늬를 갖게 되는가”를 젊은 과학자들에게 물어보았다. “그것이 종의 특수성이다”라고 과학자들은 대답해 주었다. 그 대답은, 그 질문처럼 답답한 인간의 언어였다.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다윈은 섬마다 서로 다른 생물군이 살고 있고, 거북이 등껍질의 무늬와 두께와 생김새도 섬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다윈은 갈라파고스의 그 많은 종들은 거기서부터 1000km쯤 바다로 떨어진 아메리카 대륙의 생물들과 친연성을 갖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을 인식해 온 역사에서 놀라운 전환이었다. 그러나 한 섬의 토착종은 왜 그러한 모양인가에 대해 다윈의 책은 분명한 답을 주지 못한다. 다윈은 다만 그것이 생존의 조건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만 설명하고 있다. 다윈은 아직도 관찰 중이고, 진화론은 지금 진화 중이다.

  파브르(1823∼1915)는 『식물기』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나에게 더 이상 묻지 말아 달라”면서도 이 세상 꽃들의 색깔과 향기의 비밀을 말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파브르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죽었다.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이 세상 꽃들이 제가끔 저러한 색깔로 태어나는 사태에 대해 “그것이 종의 특수성”이라는 말 이상의 설명을 할 수가 있었을까. 나는 열대 바닷속의 작은 물고기들을 들여다보면서 죽은 파브르를 걱정했다. 물속으로 들어온 햇빛이 작은 물고기들의 몸통에서 반짝였다.

지구에서 가장 깨끗한 바다가 바로 미크로네시아의 바다다. 바닷물이 맑고 투명해 눈으로는 바다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되지 않는다. 바닷속은 다양한 어종과 진귀한 산호초들이 많아 세계적인 스쿠버다이빙의 명소로 소문나 있다. [사진 한국해양연구원]

  열대의 바다에서는 아침의 첫 빛이 수평선 전체에서 퍼져오른다. 열대의 바다와 숲은 해가 일사각을 45도쯤에 자리 잡는 오전 9시께부터 갑자기 빛으로 가득 찬다. 숨어 있던 색들이 일제히 제 모습을 드러내고 꽃들은 원색으로 피어난다. 색들은 열려서 익어간다. 열대 해역에는 바람이 없어서 풍경 전체는 문득 거대한 액자처럼 보인다. 깃발도 나뭇잎도 풍향계도 흔들리지 않고 구름이 물 위에 뜬다. 햇빛을 받는 바다는 해안에서 원양까지 연두에서 울트라 마린블루의 스펙트럼을 펼치는데, 해가 중천으로 오를수록 울트라 마린블루는 멀어져가고 수평선 위에 햇빛은 하얗게 들끓는다.

축주의 웨노 섬에 있는 세비어 고등학교는 미크로네시아 연방의 대통령 3명을 배출한 바 있는 명문학교로 졸업 후 미국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

열대 바다의 저녁은 저무는 해의 잔광이 오랫동안 하늘에 머물러서, 색들은 늦도록 수면 위에서 흔들리고 별들은 더디게 돋는다. 어둠으로 차단된 수억 년의 시공 저편을 별들은 건너온다. 별은 보이지 않고 빛만이 보이는 것인데, 사람들의 말로는 별이 보인다고 한다. 크고 뚜렷한 별 몇 개가 당도하면 무수한 잔별들이 쏟아져 나와 하늘을 가득 메운다. 별이 없는 어둠 속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눈이 어둠에 젖고 그 어둠 속에서 별들은 무수히 돋아난다. 별이 가득 찬 하늘에서는 내 어린 날의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열대의 바다에서, 색(色)은 공(空)으로 소멸하지 않는다. 색들은 생멸을 거듭하면서 공을 가득 채운다. 열대의 바다에서 색과 공은 서로 의지해 있다. 색은 공의 내용이고, 공은 색의 자리다. 색과 공이 서로 끌어안고 시간 속을 흘러가고 있다. 열대의 바다에서 색과 공은 동행(同行)한다.

열대의 바다 밑은 산호의 밀림이다. 산호의 암컷은 보름달이 뜨는 밤에 일제히 산란한다. 물이 알로 뒤덮이면 수컷들이 정액을 쏟아낸다. 수정란은 보름사리의 물결에 실려서 멀리, 먼 대륙의 연안까지 퍼져나간다. 산호들이 수정하는 보름 밤에 태평양은 안개와 같은 정자와 난자로 물이 흐려지고 그 위에 달무리가 뜬다고, 한·남태평양 해양연구센터의 박흥식 박사는 말했다. 내가 머무르는 동안은 보름은 아니었다.

  나는 연구소 숙사(宿舍)에서 잠들었다. 도마뱀이 천장에 붙어서 끽끽 울었다. 도마뱀이 울 때 옆구리가 벌렁거렸다. 도마뱀은 발가락이 네 개짜리도 있었고, 다섯 개짜리도 있었다. 어떤 도마뱀은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있었고 또 어떤 도마뱀은 물갈퀴가 없었다. 울음소리의 옥타브도 조금씩 달랐다. 새벽의 꿈에 다윈과 파브르, 마젤란과 피츠로이 선장, 그리고 맨발의 원주민들이 물가에 나란히 앉아서 먼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다들 늙어보였다.

 글=김훈(소설가), 사진=이병률(시인·여행작가)

●김훈 소설가이자 자전거 레이서.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73년부터 89년까지 한국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이후 시사저널·한겨레신문 등에서 일하다 2004년 이후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칼의 노래』『남한산성』『현의 노래』『흑산』 등이 있으며, 황순원문학상(2005년) 등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병률 시인. 혼자 글 쓰고 사진 찍어 엮은 여행 에세이 『끌림』의 저자다. 2005년 출간된 『끌림』은 40만 부 이상 팔린 여행 에세이 최고의 스테디셀러다. 1967년 충북 제천 출생. 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 『찬란』 등을 냈다. 현대시학작품상을 수상했다.

나의 여행 이야기는 삼성카드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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