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현대, 영광의 V2 위업.

중앙일보

입력

매서운 겨울을 알리는 입동의 칼바람이 부는 수원 구장에서 현대가 98년에 이어 2년만에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르는 감격을 누렸다.

오늘의 히어로는 단연 퀸란(한국시리즈MVP)이었다. 현대가 올린 6점을 모두 혼자 책임졌고(3안타 2홈런 6타점) 완벽한 수비로 뒤를 받쳤다.

7차전이라는 중압감은 선수들의 플레이를 위축시킬 수 있는 만큼 선취점의 의미는 크다. 백전노장 조계현이 이를 모를리 없다. 2회와 4회 똑같은 공격패턴에서 이숭용에게 안타를 허용한 이후 박경완을 처리한 뒤 이명수와의 승부가 오늘의 분기점이었다.

2번 모두 바깥쪽승부로 일관했지만 볼판정에 대한 아쉬움이 분노와 웃음으로 나타났고, 결국 모두 볼넷을 허용하며 대량 득점의 빌미가 되고 말았다.

조계현과 이명수는 64년생과 66년생으로 나이는 조가 2살 많지만 89년에 프로데뷔를 같이 했고, 대학시절 연대와 고대로 나눠 싸운 만큼 서로가 너무나 잘 아는 사이다.

둘은 개인적으로도 절친하며 승부에 대한 집착이 강하지만 해태와 OB 유니폼을 입던 시절 이명수가 끝내기 홈런을 치고 다이아몬드를 돌 때 하이파이브를 나눌 만큼 시원한 성격의 소유자다.

조계현은 이명수와의 2차례 승부를 끝내 2사를 만든 뒤 상대적으로 약한 퀸란에게 어려운 공으로 승부할 속셈이었지만 루상에 주자가 모이자 당황한 끝에 실투를 던졌고 통타 당했다.

퀸란은 8회 자신을 잡기 위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된 전담요원 한태균을 홈런으로 두들기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재계약이 확정된 만큼 내년시즌 대활약의 예고와 더불어 천적까지 제거한 셈이다.

현대는 창단 5년만에 3번이나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2번째 정상에 오르며 강팀으로 부상했다. 모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우승이라 그룹에 활력을 선사할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프로야구는 팬들을 위해 존재하는 만큼 팬들에게 우승을 선사해야 한다.

8개 구단 중 팬이 가장 적인 편인 현대가 우승의 기쁨을 직원들과 함께 사내잔치로 끝내야 하는 것은 안타깝다. 한국시리즈가 국민적 축제로 이어지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는 탄탄한 선수단을 보유했다. 에이스 정민태가 해외진출을 한다해도 내년 시즌 정상권 유지에 문제가 없다.

이제는 팬들을 모으기 위해 눈을 돌릴 때가 됐다. 새로운 차원의 마케팅과 시스템으로 프런트를 대폭 정비해 한국야구의 선진화를 앞당기는 명문구단으로 재탄생하길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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