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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돈줄 풀고 한은은 죄고 … 3월 유동성 줄다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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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박재완(左), 김중수(右)

지난 15일 정부 과천청사. 김동연 기획재정부 2차관 주재로 재정관리점검회의가 열렸다. 김 차관은 “지난달 말까지 올해 재정(276조8000억원)의 20%인 55조3000억원을 집행했다”며 “애초 목표(17.5%)를 초과 달성한 것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내수가 부진해 1분기 중 재정집행 비율을 애초 목표인 30%에서 2%포인트 더 올리겠다”고 밝혔다. 이달 안에 최대 5조원 정도를 더 풀겠다는 뜻이다.

 같은 날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직원들이 갑자기 바빠졌다. 이날 총 21조5000억원어치의 환매조건부증권(RP)을 매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RP 매각은 한은이 시중에 넘쳐나는 돈을 줄이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다. 갖고 있는 국채를 담보로 맡기고 시중은행 등의 돈을 끌어오게 된다. 특히 이날은 한은이 생긴 뒤 처음으로 ‘증권대차’까지 했다. 국민연금에서 10년 만기 국채 7조원어치를 보름간 빌려와 이를 다시 RP 매각에 썼다. 한은이 보유한 국채보다 당장 빨아들여야 할 돈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정부가 뿜어낸 돈을 흡수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정부와 한은 사이에 ‘유동성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돈을 풀고, 한은은 묶고 있는 꼴이다. 과거에도 3월이면 이 같은 줄다리기가 종종 벌어지곤 했다. 단순 계산하면 재정은 분기마다 4분의 1씩 풀려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경기를 빨리 띄우기 위해 1분기에 돈을 확 푸는 경우가 많아 실제론 이 비율을 넘어설 때가 많다. 지난해에도 연간 계획액(272조1000억원)의 28.8%(78조4000억원)가 1분기에 풀렸다. 이 경우 분기 말인 3월 전후에 재정 집행이 더 몰리게 된다.

 그런데 올해는 이 비율이 더 커졌다. 1분기에 올해 재정의 32%를 집행하면 4분의 1에 해당하는 69조원보다 약 20조원을 더 푸는 셈이다. 정부가 공사비 등으로 돈을 풀면 이 돈은 건설사 등 민간으로 흘러들어간 뒤 결국 각 은행에 모인다. 은행은 들어온 돈의 일부를 지급준비금으로 쌓고 나머지는 금융사 간의 콜거래 등으로 단기 운용하게 된다. 그런데 풀린 돈이 너무 많으면 돈을 빌리겠다는 곳이 없어진다. 이러면 콜금리가 떨어지고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와 이를 기준으로 삼는 대출금리 등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금리가 떨어지면 가뜩이나 높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도 들썩이게 된다. 기준금리(현재 연 3.25%) 제도를 통해 물가를 관리하는 한은 입장에선 내버려둘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셈이다.

 게다가 정부는 1분기 재정집행 비율을 높이기 위해 “일시 차입 등을 통해 최대 5조원 수준의 자금을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세수는 다달이 비슷하게 들어오는데 갑자기 돈을 더 쓰려면 빌리는 수밖에 없다. 정부가 돈을 빌리는 곳이 바로 한은이다. 한은 돈이 추가로 시중에 풀리면 물가상승 압력도 덩달아 커질 수밖에 없다.

 물론 한은이 돈을 빨아들인다고 정부의 경기부양 효과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푼 돈이 일단 기업 등 민간에 넘어가 내수를 자극한 뒤 은행에 들어오면 그제야 한은이 거둬들이기 때문이다. 연세대 경제학과 성태윤 교수는 “오랫동안 저금리가 유지되고 있는데 재정까지 조기에 너무 많이 풀면 물가·재정건전성 모두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정부와 한은이 엇박자가 나지 않도록 세밀한 정책 조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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