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대전환의 시대, 대중음악 판을 바꾼 수퍼스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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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데뷔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 왼쪽부터 이주노·서태지·양현석. [중앙포토]

문화대통령, 10대들의 대통령, 신세대의 아이콘….

 서태지와 아이들.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에 그들만큼 큰 영향을 미친 뮤지션은 없다. 1992년 3월 23일 1집 ‘난 알아요’를 시작으로 96년 1월 22일 해체 전까지 총 넉 장의 앨범을 발표한 그들은 대중문화 전반에 강펀치를 날렸다. 파격적이고 창의적인 선율, 주류문화에 대한 비판, 젊은 세대에 대한 위로 등으로 시대를 대변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방송국·기획사 중심의 메커니즘을 벗어난 이들의 독자적 행보는 기존 음악산업의 물줄기를 돌려놓았다. ‘발해를 꿈꾸며’ ‘교실 이데아’ 등에선 통일·입시 등 사회적 이슈를 제기했다. 팬들 또한 조직적이고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전문가들은 “한국 대중음악 최근의 역사는 서태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입을 모은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예전의 우리 가요가 트로트·록·포크에 머물렀다면 서태지는 90년대 음악의 중심을 록과 흑인음악으로 바꿨다”고 했다.

  서태지가 데뷔한 92년은 국내 대중문화계에도 큰 변화가 몰려왔던 시기다. ‘결혼이야기’로 기획영화 시대가 열렸고, ‘질투’로 트렌드 드라마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총선·대선이 한 해에 열리며 정치권력도 요동쳤다. 국제적으로는 한·중 수교가 성사됐고, 그 직전에는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졌다. 문화평론가 이영미씨는 “정치·계급 이슈가 흐트러지며 세대·젠더·환경 등 새로운 이슈가 등장했던 때였다. 서태지의 인기에도 이런 요인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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