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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스피나롱가 섬, 한센병, 그리고 가족사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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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빅토리아 히슬롭 지음
노만수 옮김, 문학세계사 576쪽, 1만5600원

섬은 고립의 세계다. 그 고립은 이중적이다. 섬의 고립감은 당장 쓸쓸함을 떠올리게 하지만, 반면 고립의 정서 때문에 어떤 신비감을 내뿜기도 한다.

 영국 작가 빅토리아 히슬롭(53)의 장편 『섬』은 그런 복합의 세계다. 지리적으론 그리스의 작은 섬 스피나롱가를 일컫는다.

 이곳은 올림포스의 신 제우스가 태어난 크레타 섬 북쪽에 있다. 여행 책자에 작은 점으로 표시될 만큼 아주 작은 섬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으므로 내내 외로웠고,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았으므로 늘 신비했던 스피나롱가 섬을 무대로 소설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스피나롱가 섬은 실은 과거 그리스의 한센병 환자를 수용했던 곳이었다. 1903년부터 57년까지 한센병 환자 격리 수용시설이 있었다. 천형(天刑)처럼 여겨졌던 나병을 입은 환자들이 이 섬의 쓸쓸함을 그대로 끌어안았다.

 소설은 이 쓸쓸한 섬이 감추고 있던 신비로운 비밀을 찾아간다. 고고학자 아버지와 크레타 섬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스물다섯의 영국 아가씨 알렉시스. 남자 친구와 갈등 중인 그는 어느 날 자신이 어머니 소피아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과묵한 어머니가 일평생 자신의 과거에 대해 함구했기 때문이다.

 알렉시스는 어머니의 고향인 크레타 섬으로 여행을 떠나 어머니의 과거를 추적해간다. 그곳에서 외할머니의 친구인 포티니를 만나고, 모계 4대에 걸친 뜻밖의 가족사를 전해 듣는다.

 소설은 이들 모계의 이야기를 토대로 스피나롱가 섬을 일구었던 한센병 환자들의 따뜻한 동료애와 진실된 사랑 등을 풀어나간다. 알렉시스의 모계를 통해 대물림된 한센병의 가족력, 치정에 휩싸였던 가족사의 비밀 등이 이야기의 안감을 이룬다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점령됐던 크레타 섬의 현대사가 이야기의 외피를 감싼다.

 히슬롭의 데뷔작인 이 소설은 20여 개 언어로 번역돼 전세계적으로 1000만부 이상 팔렸다. 2005년 영국 출간 당시에는 『해리포터』 『다빈치 코드』등을 누르고 영국 아마존, 일간지 가디언 등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 놀라운 성과는 우선 그리스의 이국적인 풍광을 배경으로 취한 스토리의 힘일 테지만, 소설을 관통하는 가족애라는 만국 공통의 가치 때문이기도 할 테다. 쓸쓸하고 신비한 이 소설은, 그래서 읽는 이의 마음을 끝내 덥히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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