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에 재워 참기름 살짝, 굴비장아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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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호 33면

남도 음식이라며 굴비구이 전문인 척하는 집들이 제법 있는데, 종종 간판에 속고 만다. 생선이 좀 크다 싶으면 조기 사촌인 부새일 수가 있고, 부드럽게 한답시고 기름에 지지듯 구워 굴비구이의 기본을 못 살려 실망을 주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나에겐 약간 우스꽝스러운 굴비 판단의 기준이 있다. 치아가 약한 까닭에 먹어서 이가 약간 부담스러울 정도로 마른 기가 느껴져야 되고, 쌀뜨물에 담근 후 건졌다 해도 짠 기운이 남아 있어야 제대로 된 굴비 맛이다!

레스토랑가이드 다이어리알(diaryr.com) 이윤화 대표

장아찌 솜씨 하나로 자식들 다 키우고 아직도 일을 하고 계신 90세의 순창 이기남 할머님 댁에서 굴비장아찌 때문에 밥이 줄어드는 것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던 적이 있다. 짜게 먹으면 큰일난다는 저염 음식 예찬론 때문에 장아찌와 젓갈 등이 슴슴해지는 추세지만, 이기남 할머니 굴비장아찌는 진한 고추장이 굴비살과 혼연일체가 되어 있다. 그 굴비를 찢어 깨소금, 참기름으로 살짝 무친 뒤 물에 만 밥 한술에 얹어 먹는 순간. 바로 이때가 굴비장아찌가 가장 빛나는 진실의 순간이다.

한편 광주 상무지구 언덕배기에 주택을 개조한 ‘홍아네’에선 은빛 새끼 갈치 볶음, 젓갈 등 전라도 밑반찬과 함께 굴비구이가 나온다. 굴비가 처음인 사람은 약간 탄 듯 구운 마른 생선을 찢어놓은 것을 보고 조금 ‘거시기’할 수도 있겠지만, 굴비 맛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다시 가고 싶게 만드는 곳이다. 마른 굴비의 어원처럼 절대 비굴하지 않고, 싹싹한 친절도 없는 집인데 단골은 굴비 맛에 오로지 충성하고 있다.
▶이기남할머니고추장(통신판매 가능)
전북 순창군 가남리 279·063-652-3429
▶홍아네(굴비구이백반 2만5000원)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245-4·
062-384-9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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