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성남, 8분간의 대역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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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분간 쏟아진 성남 일화의 노도같은 공격에 2000년 프로축구 정규리그 최소실점(25점)을 자랑하던 안양 LG의 수비진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K-리그 정규시즌 1,2위 팀인 안양과 성남의 자존심 대결로 펼쳐진 20일 아디다스컵 준결승전에서 후반 19분을 남기고 1-3으로 뒤져 패색이 짙던 성남은 8분간 3골을 몰아넣으며 좀처럼 보기드문 대 역전극을 일궈냈다.

후반 7분 안양 안드레의 그림같은 프리킥골에 이어 26분 정광민의 슛이 네트를 흔들어 3-1을 만들었을 때 챔피언결정전직행팀인 안양의 승리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성남의 이상윤이 2분뒤 만회골을 넣으면서 관중석은 술렁거렸고 이때부터 탄탄한 조직력을 자랑했던 안양의 수비진이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한 것.

안양 수비수들의 스피드가 갑자기 떨어진 사이에 31분 전반 교체멤버로 투입된 수비수 문삼진이 우성문의 패스를 받아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동점골을 뽑아냈고 5분 뒤 김현수가 왼발슛으로 대역전극에 마침표를 찍었다.

2골차로 뒤진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수비수들까지 적극공세에 나선 성남의 투지가 빛났지만 사실은 안양의 수비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 것이 역전극에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했다.

빠른 수비수가 없는 안양의 수비진이 그동안 자물쇠수비를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은 노장 골키퍼 신의손의 `보이지 않는 손'이 크게 작용했었다.

그가 골문을 든든히 지키는 동안 수비수들은 과감한 전진수비로 상대공격을 미드필드에서부터 차단할 수 있었지만 신인 골키퍼 정길용이 출전하고부터는 `방어선'이 뒤로 밀리면서 자연히 체력소모도 많아진 것.

무릎부상으로 인한 신의손의 공백이 길어지고 있는 안양으로서는 챔피언결정전에서 한해 '풍작'을 마무리 하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를 안게 됐다.

조광래 감독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둘러 라커룸으로 향하는 동안 차경복 성남감독은 "믿어지지 않는 감독 인생 최고의 역전극"이라며 "선수들이 안양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 큰 수확이다"고 즐거워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성제.조준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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