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끼에게…" 명동 관광객 바가지 실체가 '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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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중구 남대문 지하상가 내 한 상점에서 일본과 중국인 관광객들이 쇼핑하고 있다. 사진 왼쪽의 검정 점퍼를 입은 남성(원 안)이 관광객과 다니는 호객꾼(삐끼)이다. [이승호 기자]

지난달 28일 오전 10시 서울 남대문시장.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일본인 대학생 유키(19)에게 검은색 점퍼 차림의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유키는 이 남성이 호객꾼(삐끼)임을 직감했다. 한국을 다녀온 선배들이 예전에 말해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싸게 물건 살 수 있는 곳을 알려주겠다”는 제안은 솔깃했다. 남성을 따라 상점 4~5곳을 돌았다. “잘해 주겠다”는 상인의 말에 유키는 즐겁게 시계·지갑·가죽점퍼 등을 샀다.

 유키의 기분은 이후 명동의 인삼가게를 들르면서부터 나빠졌다. 그곳 주인으로부터 “삐끼가 물건값 일부를 챙긴다”는 얘길 듣고 나서다.

 서울 남대문시장과 명동에 외국인 관광객만을 노리는 삐끼가 크게 늘고 있다. 이들은 외국인 관광객을 소개하는 대가로 상인들에게서 수수료를 뜯어가고 있다. 결국 바가지로 이어져 관광한국 이미지에 먹칠할 우려가 있다.

 삐끼들은 주로 명동 중앙우체국 앞과 남대문 경계지역에서 활동한다. 일본인 관광객이 타깃이다. 가격이 싼 상점을 알려준다고 제안한 뒤 함께 돌아다니며 쇼핑을 알선한다. 나중에 매장 상인들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 1일 만난 삐끼 박모(50)씨는 “일본인들은 관광을 일찍 시작하기 때문에 오전 9시부터 오후 6~7시 정도까지만 일한다”며 “중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일부 삐끼는 이들에게도 접근한다”고 말했다.

 품목마다 비율도 정해져 있다. 가방·안경·가죽제품은 판매가의 30%, 김·인삼은 40%, 모피는 20% 식이다. 남대문 상인 한모(41)씨는 “아예 삐끼에게 줄 돈을 봉투에 넣어 준비한다”고 말했다. 일부 관광가이드들도 같은 수법으로 돈을 챙긴다. 명동 상인 김모(38)씨는 “만약 돈을 안 주면 가이드들이 관광객을 데려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불편하지만 이들에게 잘 보일 수밖에 없다. 남대문과 명동 상권이 품목에 따라 30~90%까지 외국인 관광객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남대문 상인 이모(42)씨는 “삐끼나 가이드에게 잘못 보이면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상인들은 주요 가이드·삐끼 명단을 만들어 접대까지 한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남대문 상인 이씨는 “삐끼 없이 가게를 찾는 외국인 단골들에게만 원래 값으로 판다”고 말했다. 일부 식당에선 무료로 나오는 기본 반찬에 값을 매기는 편법을 쓴다. 삐끼 소개로 명동의 한 음식점에 들렀던 일본인 도시코(58·여)는 “일본처럼 반찬마다 돈을 따로 내는 줄 알았지만 나중에 바가지를 썼다는 걸 알고 매우 불쾌했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청 관계자는 “호객행위는 입증이 힘들고 처벌근거도 경범죄처벌법 정도만 있어 10만원 정도의 범칙금에 그친다”며 단속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김철원 경희대 호텔관광대학장은 “태국 등에서 시행하는 관광경찰 제도를 도입해서라도 삐끼들에 대해서는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삐끼=지나가는 손님을 끌어들여 물건을 사게 하는 호객꾼을 이르는 속어. 어원은 여러 가지 설 중 ‘끌어당기다’는 뜻의 일본어 ‘히키(ひき)’에서 왔다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 삐끼 처벌이 가능한 법적 근거는 경범죄처벌법 제1조 10항의 ‘물품강매 및 청객 행위’ 정도로 10만원 이하의 범칙금 등이 부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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