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누구를 위한 ‘구조조정’이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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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경제학

중앙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남기고 싶은 이야기-위기를 쏘다’는 한국 금융위기 극복의 수장(首長)이었던 이헌재 전 금융감독위원장이 처음으로 상세한 내막을 밝히는 내용이기 때문에 흥미진진할 뿐 아니라 사료(史料)로서도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불철주야로 노력했던 내용을 진솔하게 담고 있어서 감동도 있다. 그렇지만 필자는 ‘은행을 통한 기업 구조조정’이라는 원칙과 당시 세계경제 상황에 대한 판단에 오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헌재씨는 재벌 개혁에 정치권이 간여하게 되면 ‘딜’로 흐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시스템’에 의해 해야 하고, 당시 가장 바람직한 방안은 은행을 통해 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그는 ‘은행’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히 말하지 않는다. 우선 국내 은행들은 여기에서 제외된다. 이들도 ‘구조조정’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결정은 실제로 금융위에서 내려졌다.

 그러면 금융위에서 사용한 ‘시스템’은 무엇일까. 금융위가 사용한 시스템은 선진국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말하던 것이었다. 금융위는 국제투자은행, 컨설팅회사, 국제기구 등에 적극적으로 자문했다. 실제로 한국 구조조정 시장은 외국계 은행, 컨설팅사, 회계법인들의 무대가 됐다.

 2008년 이후 세계 금융위기를 겪고 난 현시점에서 이 ‘시스템’이라는 것을 다시 평가해 보자. 이 시스템을 제공해 주던 국제투자은행, 신용평가기관들이 금융위기의 전범(戰犯)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남에게 강요하기만 하고 자신들에게 적용해야 할 때는 내동댕이쳤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가 위기 극복을 위해 채택한 방식도 ‘구조조정’이 아니라 돈을 풀어 망하는 기업, 은행 살리기였다. 씨티은행, AIG, 제너럴모터스 등은 덩치가 워낙 컸기 때문에 무조건 살린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전형이었다. 왜 자신들은 지키지 않는 ‘스탠더드’를 남에게는 강요했나. 남에게 강요해 받아들이면 자신들이 돈을 벌 수 있고, 자신들이 어려울 때는 지키지 않는 것이 이득이 되기 때문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한 걸음 물러서서 한국이 급전(急錢)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IMF에 손을 벌리고 구조조정 방안을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이를 국내에서 어떻게 집행할 것인지는 전체 상황을 놓고 판단해야 했다. 이헌재씨는 경제가 상당 기간 바닥에 머무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자산을 빨리 매각하는 쪽으로 드라이브를 걸었다. 경제팀은 당초 비관론에 입각해 1998년 무역흑자를 20억원가량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로 432억 달러에 달하는 무역흑자를 올렸다. 한국경제는 실력을 갖고 있었고, 세계경제 상황도 괜찮았음에도 당시 경제팀은 너무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세계경제 상황에 대한 평가는 ‘구조조정’을 위해 자산을 팔 때 그 가치를 어떻게 매기느냐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당시 정부는 시가평가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받아들이고 이에 맞춰 구조조정을 했다. 고금리와 구조조정 소용돌이 속에서 현금에 쪼들리던 국내 기업, 금융기관들은 자산을 바닥시세로 팔 수밖에 없었다. 경제팀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자산을 싸게 팔더라도 일단 팔면 돈이 들어오고 경제성장률이 회복되니까 여기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자산을 헐값에 넘기거나 망하게 된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었겠는가.

 이번 세계 금융위기 때 미국 정부의 대응은 우리와 대조적이었다. 부실채권을 매입하면서 시가평가를 정지시켰다. 시가평가를 계속 고집하다가는 부실채권의 가치가 더 떨어져 재정부담이 더 커지기 때문이었다. 또 보유자산 매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 달러를 마냥 찍어내면서 경기회복을 시도하고 있다.

 이헌재씨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돌이켜보면 우리도 모라토리엄을 각오해야 했어… 복기해 보면 아쉬운 부분이야”라고 말했다. 본인도 IMF식 처방이 한국경제에 좋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헌재씨는 DJ정부가 IMF 처방을 받아들인 틀 안에서 구조조정을 수행했다. 금융위원장으로서 최선을 다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한국경제에 최선이었을까, 의문이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