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미술 작품의 비교 감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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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의 조각 '생각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삼국시대의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떠올린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과 깨달음의 환희를 보여주는 평화로운 인간의 모습이 가지는 차이를.

'정은미 동서양 미술 감상'이라는 부제가 붙은〈몬드리안이 조선의 보자기를 본다면〉(정은미 지음, 열림원 펴냄)
은 동양과 서양 미술 70여점을 비교 감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

화가인 지은이 정은미 님은 이 책 안에 로댕의 조각과 우리의 반가사유상을 함께 감상하는 즐거움을 담았다. 동서양의 대표적인 두 생각하는 사람에서 지은이가 주목한 부분은 발의 모습. 고뇌하는 사람의 모습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지나친 긴장으로 굵고 울퉁불퉁한 발가락 마디마디가 우뚝 솟아있다.

"사실 서양 조각사는 몸을 둘러싼 갈등과 긴장의 역사"(이 책 70쪽에서)
를 증거하는 작품이라는 게 지은이의 설명. 그러나 왼쪽 무릎 위에 놓인 오른 발의 앙증맞은 모습이 공중에 떠있는 모습의 '반가사유상'은 주변의 모든 것을 정화시키는 신비로운 힘을 가졌다고 풀어간다.

언뜻 생각하면 전혀 다른 기법과 화풍을 가지는 동양화와 서양화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없을 듯 하지만, 이 책을 쓴 화가 정은미 님은 서양화와 동양화 중에서 극도로 대비되는 부분이라든가, 유사한 점을 꼼꼼히 찾아내 해설하고, 효과적인 감상법을 제시한다. 또한 각 화가들의 생애에 대해서 살펴보는 일도 놓치지 않았다.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몬드리안의 작품 '빅토리아 부기우기'는 작품명을 모른 채 얼핏 보면 마치 우리 조선 시대의 보자기를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킬 만큼 닮았다. 수직선과 수평선, 원색의 적 청 황의 색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우주에 존재하는 절제되고 명료한 질서를 기하학적 추상회화로 표현한 것. 일반인에게는 어렵게 다가오는 '추상회화'의 아름다움은 그러나 우리의 옛 보자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은이는 몬드리안의 그림과 함께 조선시대의 이름없는 여인들이 보자기에서 이룩한 추상미의 세계를 보여준다. 쓰다 남은 자투리 천을 활용해 만든 규방 예술품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현대의 기하학적 추상 회화의 경지를 넘어서고 있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아울러 우리 전통 가옥의 창호지와 창틀을 구성하는 전통 문양들에도 우리의 추상 감각이 배어 있음을 강조한다. 이같은 우리 생활 속의 추상 감각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훈훈한 온기가 도는 자연적 추상화라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덧붙인다.

서양의 미술 작품이 동양의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는 것은 그림 속에 사람살이의 알갱이가 담긴 때문이다. 언어와 문화적 배경에서 큰 차이를 가지고 있어도 미술 작품에서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공통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또 때로는 그 차이가 같은 소재를 얼마나 다르게 표현해내는 지를 살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몬드리안의 작품과 우리 옛 조상들의 보자기에 담긴 뜻을 비교해 살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지은이는 이밖에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려 하는 서양화 속의 여인상과, 버선코의 떨림 위에 살포시 내비치는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동양화 속의 여인상을 비교해 보는 등 같은 주제가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유심히 살펴본다.

고전에서 현대까지 동 서양 미술의 비교를 통한 예술 체험은 지은이 스스로가 머리말에서 밝히듯, "보편적 동일성을 보이다가도 어떨 때는 동일한 주제에 너무나 다른 시각과 다양성"을 보여주기에 그 비교의 재미는 적지 않을 것이다.

고규홍 Books 편집장 <gohkh@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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