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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시간기행 5. - 이만수의 타격 3관왕

중앙일보

입력

“비난은 순간, 기록은 영원”

어느 감독이 남긴 명언(?)이다. 이 이야기는 매년 시즌 말에 벌어지는 타이틀 밀어주기 추태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있다.

올해도 한국프로야구에는 이런 일이 재현지고 말았다. 감독 김재박에 주연 박종호, 조연 박장희가 만들어낸 ‘박종호 타격왕 밀어주기’의 추악한 테마가 야구판의 대미를 초라하게 장식하고 말았다.

하지만 전언했듯이 이런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유래는 김영덕 감독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시간은 84년 말로 거슬러올라간다.

삼성은 전기리그에서 이미 32승 18패로 전기리그를 1위를 차지해 한국시리즈 진출이 확정된 상태였다. 당시는 한 시즌이 전·후기로 나뉘어서 전·후기 1위팀끼리 한국시리즈에서 맞붙는 형식이었다.

후기리그는 각 팀마다 최종 2경기를 남겨놓고 롯데(27승20패1무)와 OB(26승21패1무)가 1게임차이로 치열한 1·2위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롯데와 OB는 각각 삼성과 해태와의 최종 2연전만을 남겨둔 상태. OB가 2연승을 한다 하더라도 롯데가 2연승을 거두면 후기리그 우승팀으로써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게 돼서 OB로서는 자력진출이 힘든 상황이었다.

이미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삼성으로서는 롯데와 OB 중에서 어느 팀이 올라올지 모르기에 두팀에 대한 전력분석을 했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삼성은 여기서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추악한 연극을 꾸며냈다. ‘고의 패배’와 ‘이만수 타격3관왕 밀어주기’로 돌이킬 수 없는 역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삼성은 82년 원년에 OB와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어 패한 경험이 있고, 84년에 OB와의 상대팀 전적에서도 9승 11패의 열세를 보였다. 롯데에게는 13승 5패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어 롯데를 고의적으로 밀어줘 한국시리즈를 치룰 작정이었다.

이에 삼성은 롯데와의 최종 2연전 중 1차전에 선발로 진동한을 내세웠고 롯데는 중요한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각본에 의해 에이스가 아닌 천창호를 선발로 내세웠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했다. 진동한이 롯데 타자들에게 배팅볼 수준의 볼을 던져주었지만 ‘작전’과 달리 롯데 타자들이 제대로 쳐내지를 못했다. 반면 주로 2진급 선수들로 구성된 삼성의 타선이 폭발하며 삼성이 3회까지 7:0으로 경기를 리드해나갔다.

이러자 삼성 코칭스테프의 무언의 지시가 있었고 일종의 위기감을 느낀 삼성 선수들이 고의낙구와 고의실책을 저지르며 결국 롯데가 11-9의 믿기지 않는 역전승을 일구어냈다.

삼성의 져주기가 자행되는 동안 일어난 또 하나의 볼썽사나운 일은 이만수 타격3관왕 밀어주기였다.

삼성·롯데의 최종 2연전이 벌어지기 전 이만수는 타율 0.340, 홈런 23개, 타점 80개로 타격 3개 부문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홈런은 김용철(롯데)에게 2개차로 앞서있었고, 타점은 이광은(MBC)에 12개 차이로 앞서 있어 사실상 최소 2관왕은 따논 당상이었다.

문제는 타율. 홍문종(롯데)이 타율 0.339로 1리차로 이만수를 바짝 뒤쫓고 있어 삼성과의 2연전에서 이만수와 진검승부를 벌일 태세였다.

하지만 홍문종의 타격왕에 대한 꿈은 삼성의 철저한 고의사구 작전에 가로막히며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삼성 투수들은 져주기 경기와 함께 홍문종을 무조건적인 고의사구로 내보내 ‘9연속 고의사구’를 연출해냈다. 이런 동안 이만수는 벤치에 앉아 삼성투수들이 저지른 연극을 지켜보았고, 결국 그는 홍문종에 1리 차이로 앞서며 타율 부문까지 거머쥐게 되었다.

이로써 이만수는 타격부문에서 가장 중요시여기는 타율, 홈런, 타점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타격 3관왕에 올랐고, 이 기록은 이후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도 달성하지 못한 대기록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 기록은 정정당당한 승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결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스포츠인들은 떳떳치 못한 승리, 깨끗한 패배의 갈림길에서 종종 고민을 하곤 한다. 삼성과 이만수는 한순간 욕은 먹되 평생 영광으로 남을 수 있는 길을 택한 것이다.

삼성과 이만수의 잘못된 선택이 자칫 자라나는 아이들로 하여금 ‘스포츠계에서는 승리와 1등만이 최고의 가치’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킬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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