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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소아당뇨 … 제대혈 있으면 한 숨 던다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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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백혈병 진단을 받은 김현수(6·서울 성동구)군.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다행히 김군의 부모는 출산 당시 제대혈 은행에 아이의 탯줄혈액(제대혈)을 보관했다. 의료진은 김군에게 자가(본인)제대혈을 이식했다. 이식 후 김군의 몸안에선 건강한 혈액세포가 자랐고, 이식 거부반응도 없었다. 한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이영호 교수는 “제대혈 이식을 받은 백혈병 환자의 완치율은 골수이식과 비슷한 50~60% 수준”이라고 말했다.

탯줄에서 채취한 제대혈을 원심분리해 유효한 성분만 분리해 내고 있다. (작은 사진)아기를 출산한 후 잘라낸 탯줄에서 제대혈을 채취하는 모습.

작년 20개 기관 평가, 17곳만 허가

최근 제대혈은행(탯줄혈액을 보관하는 곳) 세 곳이 퇴출됐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운영된 제대혈 은행은 모두 20곳.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7월 ‘제대혈 관리 및 연구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면서 20개 기관을 재평가한 결과, 이 중 3곳을 제외한 나머지 17곳만 허가했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안전과 조지은 사무관은 “서울탯줄은행(히스토스템)은 제대혈 품질관리에 문제가 드러났고, 나머지 두 기관(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은 법 시행 전에 제대혈 모두를 보라매병원제대혈은행으로 이관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제대혈은행은 1996년 가톨릭조혈모세포은행이 최초다. 민간 기업으로는 1997년 라이프코드가 가족제대혈은행을 시작했고, 이후 히스토스템, 메디포스트 등 많은 기업이 제대혈보관사업에 뛰어들었다. 2010년 말 기준으로 국내에는 44만3005개의 제대혈이 보관 중이다. 가장 많은 양을 보관하고 있는 업체는 메디포스트다(13만800여 개).

제대혈은행은 운영 목적에 따라 기증제대혈은행과 가족제대혈은행으로 나뉜다. 기증제대혈은 기증받은 제대혈을 유전자적 특성이 일치하는 다른 환자에게 이식할 수 있다. 반면에 가족제대혈은 자신의 아이만 치료하도록 하는 개인용이다.

제대혈 보관 잘 돼야 이식 성공률 높아

제대혈은 채취 이후가 더 중요하다. 신속하게 이송·보관·관리가 이뤄져야 제대혈에 있는 조혈모세포(혈액구성세포를 만드는 어머니 세포)와 간엽줄기세포(신경·뼈·연골 등 장기로 분화가 가능한 세포)를 건강하게 보존할 수 있다. 건강한 세포가 많을수록 세포 생착을 돕는 단백질이 많아져 이식 성공률을 높인다. 같은 제대혈이라도 품질이 더 좋다는 의미다.

보령바이오파마 제대혈사업본부 김성구 본부장은 “제대혈은 출산 후 한 번만 채취가 가능하다”며 “제대혈 품질을 유지하는 체계적인 관리시스템을 보유한 곳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제대혈은행을 제대로 고르기 위해선 업체의 안전성·신뢰성·전문성·제대혈 보관품질 적합성·정부 허가업체 여부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10년 이상 장기간 보관하는 만큼 재무구조는 건실한지, 관리시스템은 믿을 만한지, 제대혈 보관 품질은 적합한지, 전문성은 있는지, 정부 허가를 받았는지 등을 꼼꼼히 점검하라는 것. 보관 중인 제대혈이 손상됐을 경우 어떻게 보상할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제 제대혈 보관업 사업 초기 KT바이오시스는 경영난을 이유로 2005년 부도 처리됐다. 직원들이 퇴사하면서 보관 중인 제대혈은 방치됐다. 결국 법 시행 전이라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종결됐다.

신수(진단검사의학과) 보라매병원 기증제대혈은행장은 “개인이 가입하는 가족제대혈은행은 사적인 계약이므로 모든 책임이 계약자에게 있다”며 “정부의 허가를 받은 곳인지 등을 확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뇌성마비·발달장애 치료에도 적용 앞둬

제대혈 이식 초기에는 백혈병·재생불량성빈혈 같은 혈액질환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했다. 요즘엔 제대혈의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해 뇌성마비·발달장애·소아당뇨병 같은 난치병 치료에도 임상연구를 하고 있다.

CHA의과학대 분당차병원 재활의학과 김민영 교수는 “소아뇌성마비 환자를 대상으로 보관했던 자가제대혈 이식과 재활치료를 병행했더니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와 비교해 상태가 상당히 호전됐다”고 설명했다.

어린이에게만 제한적으로 사용했던 한계도 극복됐다. 비슷한 유전형을 가진 여러 개의 제대혈을 모아 사용하는 기술을 통해서다.

한양대 소아청소년과 이영호 교수는 “제대혈 이식에 나이제한은 없다. 문제는 체중이다. 2006년 이전엔 주로 제대혈 1개만 사용했다. 제대혈 1개로는 몸무게 30~40㎏인 사람에게만 이식이 가능하다. 10세 이전에서 시술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해외에선 성인 제대혈 이식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 제대혈의 이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권선미 기자

제대혈= 탯줄과 태반에 있는 혈액. 구성 성분은 피와 동일하다. 다만 피를 생산하는 조혈모세포와 신경·근육·연골 같은 조직을 구성하는 간엽줄기세포가 많다. 가족제대혈은행을 이용할 때는 정부의 허가를 받은 곳인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 비용은 15년 보관을 기준으로 약 90만~130만원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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