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展 12일부터 예화랑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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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사각형 몇개로 분할한 화면에 한두가지 색만 칠한 단순간결한 추상화. 언뜻 보면 미니멀리즘 회화 같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상당히 다르다.

일체의 의미와 감정을 배제한 이성적 차가움이 아니라 한국적인 따스함이 배어있는 독특하고 그윽한 색상 때문이다.

오는 12~28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예화랑에서 열리는 최선호(43)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의 개인전은 현대적으로 해석한 한국미를 느낄 수 있는 기회다.

그는 서울대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뒤 간송미술관에 들어가 8년간 한국미술사를 연구했다. 이때 그가 임모(臨摹)한 겸재 정선의 그림은 전문 모사꾼도 탐을 낼 정도였다고 한다. 1988년 불현듯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대 대학원에서 현대미술을 공부하고 92년 귀국했다.

그림에는 자신의 경력처럼 동서양의 미학이 어우러져 있다. 뉴욕에서 현대 미니멀리즘과 한국 전통미술이 단순 간결함의 미학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연구를 계속한 결과다.

"조선 가구의 엄정한 절제미를 사랑합니다. 미니멀과 상통하죠. 제가 선호하는 직선의 출전이기도 하고요"라는 그는 "전통을 답습하거나 전수하는 차원에 머물러서는 부족합니다. 현대를 알아야 전통을 알고 새로운 창조가 가능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에서도 캔버스 위에 한지를 덧붙이는 등 현대와의 조화를 추구함으로써 생명력을 확보하려 했다는 게 그의 얘기다.

작품의 분위기는 한국적이다. 전통염료에서 따온 쪽빛·다홍·치자·연두·자두의 색상은 은은하고 깊은 맛을 풍긴다.

물감이 화면에 엷게 퍼져나가 캔버스의 질감을 그대로 보여주는 표면처리는 동양화의 발묵기법을 연상케 한다. 동양화에서 볼 수 있는 탈속(脫俗)의 정신은 그가 바라는 경지이기도 하다.

평소 "제목이 작품의 반이다"며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작가는 이번의 8번째 전시에도 시적인 이름들을 선보이고 있다.

'꽃가루 하나 강물에 떨어지고' '마음이 헐거워 질 때 까지' '한 선끝에 그대 가고, 다른 선 보이지 않는 저 끝에 내가 오고' '빈 뜰의 봄' '눈내리는 새벽'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중간' 등.

좋아하는 황동규의 시나 당시선(唐詩選)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제목들이다.

02-542-5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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