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숨…15년째 개포 재건축 '롤러코스트'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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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일기자] 지난해 이맘 때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일대 개포지구에 대한 재건축 개발계획안이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심의을 통과한 것이.

당시 주민들은 환호했다. 지난 15년간 개포지구를 덮었던 먹구름이 걷혔다며 좋아했다. 낡을 대로 낡은 개포지구 아파트 2만8000여 가구에 대한 재건축 사업의 신호탄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개포지구 내 30% 정도로 추산되는 토박이 주민들의 얘기다. 1990년대 후반 들어 재건축 얘기가 나오면서 손바뀜도 많았지만 아직도 전체 주민의 30% 정도가 20여 년 전부터 같은 곳에서 살고 있다.

한 채에 7~8억원이 넘는 집이지만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베란다, 바람이 불면 부서질 것 같은 창틀에 밤잠을 설쳐 온 사람들이다.

열악한 주거환경 때문에 전셋값이 워낙 싸 전세를 주고 이사 가기도 쉽지 않다. 팔고 나갈 수도 있겠지만 이웃한 강남권에서는 집을 장만하기 쉽지 않은 데다, 떠나자니 고향을 등지는 것 같아 망설여 온 사람들이다.

“재건축 당위성 고려하지 않아”

개포주공 재건축 사업은 지난 15년간 공회전만 거듭했다. 투기 방지, 집값 상승 억제 등으로 수차례 벽에 부닥치며 횡보를 거듭한 것이다. 그러다 지난해 이맘 때 드디어 사업에 물꼬를 텄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요즘 개포주공은 어깨가 축 쳐졌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소위원회가 소형 주택형을 기존 소형의 50% 만큼 지으라고 요구한 때문이다. 소식이 알려지자 매수세가 뚝 끊기면서 며칠 새 집값이 3000만원 이상 내렸다.

소형을 기존 소형의 50% 만큼 지으면 주민들의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사업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집값이 폭락세지만 오히려 주민들은 담담하다. 이런 일로 재건축 사업이 벽에 부딪힌 게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토박이 주민들을 무력하게 하는 것은 집값이 아니다. 그동안 정부나 서울시가 재건축 사업으로 인한 파장만 고려했지 왜 재건축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0여 전부터 이곳에 살고 있다는 한 주민은 “정부나 서울시가 주거환경 개선은 무시하고 집값 안정에만 신경을 쓰는 동안 주민들의 안전이 위협당하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이 말하는 개포지구 재건축 사업의 당위성이다.

사실 개포지구는 강남권 노른자위 재건축 단지라는 이유만으로 열악한 주거환경에도 불구하고 재건축이 번번이 무산됐다. 정부의 집값 안정 대책, 투기 방지 대책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구청장이나 시·구의원들은 선거 때면 철석같이 재건축을 약속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이번 서울시의 방침에도 소형이 많은 개포주공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주민들이 바라는 것은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할 정도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하루 빨리 개선하는 것이다. 물론 주민 70% 정도가 투기를 목적으로 들어 온 투자자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개포지구가 비록 투기의 온상일지라도 사람이 거주하는 ‘집’인 만큼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의 주거환경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는 있어 보인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투기의 온상(역기능)으로만 보지 말고 주거환경 개선(순기능)이라는 차원에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수요가 많은 도심에서 새 주택을 공급하는 데 재개발·재건축만큼 효율적인 방법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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