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직원도 모르는 저축은행 대출금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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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김혜미
경제부문 기자

“이 동네, ‘후진’ 곳이에요. 데이터? 그런 거 안 나와요.”

 한 대형 저축은행 간부의 자조 섞인 말이다. 이 저축은행의 신용대출 금리가 얼마나 되는지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다. 금융의 생명이 투명성이란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국내 저축은행은 ‘투명’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은행이 한 달에 한 번 발표하는 예금·대출잔액과 금리가 공식 통계의 전부다. 저축은행의 신용대출 금리가 대부업체 수준으로 치솟는다 해도 소비자는 알 길이 없다는 얘기다. 소비자만 모르는 게 아니다. 시장 전문가라는 증권사·신용평가사 애널리스트는 물론 저축은행중앙회조차 “관련 정보가 없다”며 손사래를 치기 일쑤다.

 저축은행의 속사정을 묻는 기자에게 이들은 “금융감독원에 물어보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금감원 관계자는 “세부 정보는 민감한 부분이라 알려줄 수 없다”며 “(우리가) 알아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잘 알아서 할 테니 소비자는 신경 끄라는 얘기다. 그는 “전체 대출에서 저축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1%도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덩치 작은 저축은행의 정보에까지 왜 관심을 갖느냐는 식이다.

 정보가 돌지 않다 보니 시장 전문가는 ‘저축은행 대출 중개인’이 돼버렸다. 지난해 1월 말 기준으로 저축은행과 계약한 중개인은 약 2600명이다. 이들의 손을 거치고 나면 대출 금리는 2~3%포인트 정도 더 올라간다.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다. 그것도 시중은행에 비해 한 푼이 더 절실한 서민 고객들이 주로 피해를 보게 된다. 지난해 계속된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 때 가슴을 쓸어내린 이들 대부분이 60세 이상의 고령층과 서민이었다.

 스위스 출신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책 『불안』에서 “현재는 삶의 결과를 ‘운’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라고 말했다. “예전과 달리 사람들에게 주변을 미리 통제하는 힘과 기술이 생겼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정확한 예측·계산의 대명사인 금융권에서도 저축은행은 여전히 ‘운’이 지배하는 영역으로 남아 있다. 올해로 저축은행이 ‘제도권 금융’이 된 지 꼭 40년째다. 저축은행 고객은 돈을 거래할 때 언제까지 운을 믿고 베팅해야 하는 것일까.

김혜미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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