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윤리의식 마비된 의사들의 시험 부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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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의사 시험에서 또다시 부정 행위가 적발됐다. 지난해 의대생들이 응시한 의사 국가시험에 이어 레지던트 수련과정 이수자들이 본 외과 전문의 자격시험에서다. 두 시험에서 드러난 부정 행위는 흡사했다. 출제위원으로 들어간 대학 교수들이 자교(自校) 출신들에게 문제를 알려주는 방식이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이번 전문의 자격시험에서는 부산 D대 교수 두 명이 1차 주관식 문제를 유출해 이 문제를 접한 네 명이 1차에서 1~4등을 차지했다고 한다. 스승들이 앞장서서 제자들에게 부정을 저지르라고 조장한 셈이다. 윤리의식이 마비된 이들에게 어떻게 생명을 보듬는 인술(仁術)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들은 조사 과정에서 이런 식의 문제 유출은 과거부터 있었던 관행적인 일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문제 교수들도 시험 문제를 내러 합숙하기 전 시험에 나올 만한 부분만 알려줬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네 명의 점수가 40점 만점에 39점(평균 26.8점)이 나왔다고 하니 시험 문제가 통째로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다. 복지부는 외과를 포함해 총 26개과 전문의 자격증 시험 모두에 대해 부정 여부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대한의사협회가 시험 문제 출제를 전문학회에 의뢰하고, 학회가 대학 교수들로 출제위원을 구성하는 현행 방식도 이번에 개선되어야 한다. 어느 교수가 출제에 들어갔는지 응시자들이 다 알고 있다 보니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사전에 예상 문제를 공유하는 게 현실이다. 의사들끼리 출제하고 응시하는 시험의 폐쇄성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문제 유출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의협이 나서서 각 과별로 문제 은행을 구축하고, 무작위로 문제를 골라 출제하는 방식으로 개편하는 게 맞다.

 의사들이 시험 부정 행위를 해도 면허 취소나 자격 정지와 같은 행정 처분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의료법상 의료 행위와 관련한 범법 행위에만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고의 엘리트라는 의사들의 부정 불감증이 이 정도 수준이라면 시험 부정에도 강력한 처벌이 뒤따르게 법을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