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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세와 이방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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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신용호
정치부문 차장

“아이고, 아무 말도 안 한다. 면접 보러 왔는데 무슨 말을….” 20일 오후 5시, 새누리당 첫 공천심사가 열린 부산시당 회의실. 경남 사천에 공천을 신청한 이방호 전 사무총장이 손사래를 친다. 그는 ‘4년 전 총장으로 공천을 했는데 지금 소감은 어떠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고개만 절레절레 흔든다. 정권 초기 최고 실세로 꼽히며 공천을 주도했던 그가 심사대에 섰다.

 꼭 4년 전, 그는 강했다. 당시 그는 응소율(應召率)이란 말을 가끔 썼다. “평의원일 때 의원 열을 초청하면 한두 명 왔나. 정책위의장을 할 땐 열 중 네다섯은 오더만. 근데 요샌 열을 부르면 글쎄 열서넛이 와 있다니까.” 영남의 한 중진 의원은 공천심사위원회의 분위기가 심상찮아 보이자 이른 아침 이 전 총장의 자택을 찾아가기도 했다. 이 중진 의원은 “집에 가보니 이미 여럿이 줄을 서 있더라”며 “공천 권력을 실감했다”고 했다.

 그랬던 ‘이방호 공천’은 실패란 평가가 많다. 계파 공천이 있었던 당시 그에게선 사심(私心)이 읽혔다. 그는 공천 후 친박계로부터 ‘학살 주역’으로 지목받는다. 결국 친박계 지지자들의 낙선운동 때문에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다. 그 후 실세 자리에서 물러나 4년간 제대로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지냈다.

 이제 그 자리에 권영세 사무총장이 섰다. 사무총장은 공심위원이자 비상대책위 참석 멤버다. 한마디로 공천 실무작업을 책임지는 핵심이다. 상황은 그때와 많이 다르다. 대선 승리 후 4개월여 만에 치러져 공천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당시와 지금은 반대다. 100석도 못 얻는다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예전에 비해 권 총장은 권력을 누릴 분위기는 아니다. 잘나가던 그때와 달리 민심이 당을 떠나 있다 보니 고민이 많을 터다.

 그래도 총장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오히려 역할이 더 커졌을 수 있다. 공천의 객관성을 강조하는 참에 모든 여론조사나 도덕성 자료를 다루는 총장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 달 남짓이다. 공천 결과에 따라 그의 위상이 높아질 수도 있겠지만 아니면 누군가처럼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상황이 2008년과 다르다 해도 책임의 무게는 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공천은 새누리당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가 아닌가.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거듭 “공천은 공심위에서 정한 원칙과 기준에 따라 할 것”이라고 했다. 박 위원장의 스타일상 ‘감 놔라 배 놔라’하며 관여할 것 같지 않다. 그래서 그의 어깨가 더 무겁다. 당내에는 ‘MB 실세 배제론’, ‘영남 친박 물갈이론’ 등 갖은 시나리오가 돌아다닌다.

 그가 공천을 잘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난무하는 시나리오에 흔들리지 말고 객관적 기준에 따라 자를 사람은 자르면 된다. 그가 누구여도 말이다. 그리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고 국민이 원하는 새로운 사람을 발탁하면 된다. 계파에 신경 쓰지 말고 시스템에 따라 말이다. ‘학살’과 ‘쇄신’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 잣대는 사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