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이 영어로…황당한 여수엑스포 표지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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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① 영어 틀리고 이순신광장에 설치된 세계지도 조형물. 태평양의 영문이 ‘Pacific’이 아닌 ‘Prcific’으로 잘못적혀 있다. ② 한자·한글 표기 틀리고 여수공항의 청사 안내판. 약속장소(約束場所)중 마당 장(場)을 베풀 장(張)으로 잘못 써 약속장소(約束張所)라고 표기했다. 렌트카는 렌터카로 바로잡아야 한다. ③ 한자 안내판에 웬 한글 여수엑스포역의 간판. ‘엑스포’의 한자어 표기가 박람회(博覽會·보란후이) 대신 한글을 그대로 쓴 ‘麗水엑스포驛’으로 표기돼 있다. 역은 중국어로는 참(站·잔)이다. [사진=최경호 기자]

20일 오후 2시 전남 여수시 덕충동 여수엑스포역. 역사 정문의 간판을 쳐다보던 중국인 유학생 리더순(李德順·24)씨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역 이름을 쓴 한자 표기가 ‘麗水엑스포驛’으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기차역 안팎의 간판과 안내판 모두 똑같이 적혀 있었다. 이 역에는 한글과 영어(Yeosu Expo Station), 한자로 표기된 간판과 안내판이 5곳에 설치돼 있다. 리씨는 “엑스포의 한자어인 박람회(博覽會·보란후이) 대신 한글을 그대로 써놓은 것을 보니 황당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차량으로 30분쯤 떨어진 율촌면 여수공항. 공항 청사 1층의 에스컬레이터 옆에 설치된 안내판에 약속장소(約束張所)라는 한자 표기가 눈에 띄었다. 약속장소(約束場所) 중 마당 장(場)을 베풀 장(張)으로 잘못 쓴 것이다.

 여수세계박람회 개막이 81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관광 안내 시스템에서 적지 않은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박람회의 외국인 중 8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한자문화권 관광객을 위한 도로 표지판과 관광 안내 표기에서는 잇따라 오기(誤記)가 발견되고 있다. 안내 표지판도 부족한 것으로 밝혀졌다.

 여수엑스포역은 지난해 10월 역 이름을 바꾸면서 간판과 안내판의 한자 표기에 ‘엑스포’라는 한글을 그대로 써넣어 요우커(游客·중국인 관광객)의 눈총을 받고 있다. 호남대 중국어과 손완이 교수는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들을 위해 한자를 표기하는 것인데 한자와 한글을 같이 쓴 것은 모순”이라며 “고유명사라도 한자 표기는 외국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코레일 역운영처의 임수석 차장은 “외래어인 엑스포의 한자어가 없어 코레일의 역명표기 기준에 따라 역명을 그대로 썼다”고 말했다.

 도로 안내판도 대부분 한글이나 한글·영문 혼용뿐이어서 중국과 일본 관광객들의 불편이 우려된다. 박람회 기간 여수를 찾을 중국인과 일본인은 각각 25만 명, 15만 명으로 전체 외국인(55만 명)의 73%에 이른다. 여수시는 박람회 전까지 시내 교통표지판 1500개 중 297개의 표지판을 교체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기존 표지판에 박람회장의 위치와 방향을 새로 추가하는 수준이다.

 진남관(鎭南館)과 향일암(向日庵) 등 주요 관광지에서도 외국인들을 위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다. 유적지의 역사적인 의미나 안내가 대부분 한글로만 소개돼 박람회의 ‘큰손’인 중국·일본인들의 불편이 예상된다. 고정 안내판 설치가 어렵다면 임시 안내판이라도 세워야 외국인들의 관광 편의를 높일 수 있을 전망이다.

  도심공원과 관광지의 각종 안내판과 시설물의 오기나 잦은 고장도 문제다. 중앙동의 이순신광장은 광장 바닥에 설치한 세계지도에 태평양을 ‘Pacific’이 아닌 ‘Prcific’로 표기했다가 시민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지난 15일에야 수정했다.

여수=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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