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명문대생 몰리는 건 연봉 때문만 아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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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호 21면

미국의 명문대들이 졸업생을 금융계 이외의 분야로 유도하려고 애쓰고 있다. 드루 G. 파우스트 하버드대 총장은 2008년 “월가의 가공할 만한 채용 파워에 무너지지 말고 버티자”라는 내용의 연설을 한 적도 했다. 터프츠대는 졸업생이 공직을 택할 경우 학자금 대출까지 갚아준다. 하지만 월가의 위상은 여전히 굳건하다. 지난해 하버드대 졸업생의 17%가 금융업을 선택했다. 예일대는 2010년 졸업생의 14%, 프린스턴대는 36%가 금융계로 향했다. 2008년 금융위기로 은행·증권사들이 공적(公敵) 소리를 들었지만 이들은 여전히 가장 인기 있는 직장이다.

명문대 졸업생은 왜 금융업으로 가는가. 두 가지 설명이 그럴싸하다. 경제적 요인을 중시해 보수가 많다는 점을 꼽는다. 사회적 요인을 중시하는 이들은 학생들이 끼리끼리 어울렸던 친구나 선배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사실 두 가지 설명은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친구와 돈을 함께 따라가기도 한다. 하지만 명문대 학생들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해 보면 두 설명을 넘어서는 심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대학 교육의 실패라는 것이다. 월가는 법조계·컨설팅 업계와 더불어 대학 교육의 실패 덕분에 인재를 긁어 모으고 있다.

대부분 학생들에게 대학은 최종 목표다. 일단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성공했다고 자부한다. 주변에서 더 이상 걱정하지도 않는다. 대학에 들어오면 문학·역사학·철학·정치학 같은 재미있고 유익한 과목을 공부하라는 권유를 받는다. 하지만 사회에 나가서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선택하는 ‘기술’을 배우진 못한다. 졸업반이 되면 그에 관해 아는 게 없다는 걸 절감하지만 때는 늦었다. 수천 개 회사에 수천 가지 일자리가 있겠지만 나에게 맞는 일이 무언지 잘 모른다.

똑똑하지만 현실감각이 부족한 졸업생을 대학이 대거 배출한다는 사실을 월가는 잘 안다. 금융업이 꼭 좋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그렇다고 어느 회사로 가야 할지 똑 부러진 생각이 없는 학생들을 유혹한다. 월가는 ‘자신을 드러내는 기술(marketable skill)’을 졸업생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한다. 대학은 해준 적이 없는 일이다. 경영대학원(MBA) 같은 비즈니스 대학원 진학도 시켜준다. 금융회사 입사자 대부분은 결국 그 직업을 좋아하게 되거나 그 생활방식에 순응한다.

대학은 여전히 문제의 본질을 깨닫지 못한다. 젊은이들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인재가 되기보다 돈 잘 버는 월가만 선호한다고 힐난한다. 하지만 대학은 월가식 ‘기술’을 가르치는 걸 과소평가하고 있다. 명문대 졸업생이 월가에 몰리는 것이 핵심은 아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도 제대로 준비가 안 됐다고 여기고, 사회적 기여가 무언지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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