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을 외면한 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기자들의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난 20년간 중국은 놀랄 만한 발전을 이룩했다. 하지만 중국의 힘과 번영이 확대된 만큼 중국의 책임은 더 커졌다.”
오바마 대통령 말투가 단호해졌다.
“미국은 세계경제 체제에서 모든 나라가 동일한 규칙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데 중국이 기여해야 한다고 본다. 인권문제 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한반도나 이란 핵 문제 등 국제 이슈에서 더 큰 역할을 맡기를 기대한다.”
공정한 게임의 룰을 강조하며 강대국에 맞는 책임을 지라는 의미였다.
시 부주석은 카메라 대신 오바마 대통령의 얼굴을 쳐다보며 답했다.
“내가 여기 온 건 두 나라 관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진전시키기 위해서다. 우리는 상호 존중과 상호 이익의 바탕 위에서 협력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도록 해야 한다.”
우회적이었지만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발전하는 길을 모색하자는 얘기였다. 오바마 대통령의 강대국 책임론을 시 부주석이 상호존중론으로 받은 셈이다. 시 부주석은 뒤이은 오찬에서 조 바이든 부통령이 다시 한번 강대국 책임론을 제기하자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선진국(developed)인 반면,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개발도상국(developing)”이라며 “대화로 해결해야지 보호주의로 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14일 오전(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있은 오바마 대통령과 시 부주석 간 첫 공식 만남은 예정된 시간 45분을 훌쩍 넘겨 85분을 채운 뒤에야 끝났다. 정상회담이 아닌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 이다. 이중 공개 회동은 17분이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란 핵 문제와 시리아 등 함께 다뤄야 할 문제가 많아 시간이 길어졌다”고 설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 제재와 관련한 유엔안보리 표결 때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한 데 대해 “실망했다”고도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백악관 관계자들은 공개된 만남에서의 뼈 있는 발언과 달리 비공개 만남선 다양한 주제로 교감했다고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11월 대선에서 재선될 경우 시 부주석과는 적어도 4년 이상을 경쟁하고 협력해야 하는 관계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케네스 리버설 중국센터장은 “11월 대선을 치러야 하는 오바마 대통령이나, (올가을 최고지도자로 오르는) 시 부주석, 둘 다 국내정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며 “공개된 발언보다는 두 지도자가 인간적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게 이번 만남의 의미”라고 말했다.
특히 중국의 미래권력인 시진핑을 맞는 미국의 환대는 파격에 가까웠다.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만 12시간 동안 만난 인사만도 오바마 대통령, 바이든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 존 브라이슨 상무장관 등 각료 대부분과 정·재계 인사를 합쳐 300여 명에 달한다.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직을 겸하고 있는 시 부주석을 맞아 펜타곤에선 패네타 장관이 건물 앞 계단까지 마중나왔고, 예포 19발이 발사됐다.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을 찾은 ‘부(副·vice)’자 들어가는 인사들 중 이런 환대를 받은 사람은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중, 규칙 지켜라” vs “미, 상호 존중을” … 오바마는 시리아 문제에 ‘실망’ 표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