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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숙련 IT 인력' 절대 부족 (1)

중앙일보

입력

신생 인터넷 벤처기업 A사는 사업을 펼쳐보기도 전에 회사 문을 닫을 처지에 놓였다. 비즈니스 모델을 구현할 핵심 기술인력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OO 기자재를 거래하는 독특한 전자상거래 아이디어로 투자약속까지 받아낸 A 사는 지난 4개월 동안 모든 직원이 인력 찾기에 매달렸지만 아무런 결과도 거두지 못했다. 결국 지난 9월까지 사이트를 오픈 시키기로 한 투자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자금 뿐만이 아니라 회사 운명까지도 어려워진 상황이다.

무선인터넷 솔루션을 개발하는 A사의 S 사장도 인력난을 겪기는 마찬가지. S 사장은 지난 8월말 열린 무선인터넷 세미나 강사로 나와 업계 최대의 어려움은 인력난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할 전문 인력 10명을 뽑기위해 몇 달째 물색하고 있지만 아직 1명도 뽑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달여가 지난 지금 A 사는 여전히 새로운 인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덕분에 회사 내외부적으로 추진하는 4개의 관련 프로젝트 성사는 불투명해진 상태.

국내에서 활동하는 세계적 다국적 기업 I 사도 IT 인력난에서 비켜 날 수 없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큼 명성이 자자한 회사인데도 불구하고 사람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 회사 Y 이사는 언젠가는 괜찮아 지겠지하는 생각이 벌써 1년을 지나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문제는 기술 인력 ‘모셔오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 내부적으로 마련된 보상 기준이 현 시장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데서 기술 인력자들의 요구와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 I 사는 기본급 외에 다양한 복지정책을 제시하지만 기술자들의 마음을 돌리기는 쉽지 않다.

고숙련 전문인력이 부족하다

“사람은 많은데 정작 필요로 하는 사람은 없다.” 요즘 IT업계 관계자들의 한결 같은 하소연이다. 본격적인 취업시즌을 앞두고 IT 업계는 구직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작 업계에서는 쓸만한 사람이 없다고 발을 구른다. 저숙련 인력은 풍부한데 고숙련 전문가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IT 업계 구인난의 특징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IT 인력을 적절히 공급하는 인력양성 기관 또한 부족해 당분간 IT 인력난은 풍요 속의 빈곤을 이룰 전망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http://www.kisdi.re.kr)의 권남훈 박사는 “KISDI의 예측에 의하면 IT 인력의 수급 불균형은 2004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는 주로 학사학위 소지 이상의 중, 고급 인력의 부족에 기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기능별로 볼 때, 특히 S/W 분야의 인력부족이 심할 것이며 이는 약 15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오히려 학사학위 소지이하의 인력의 경우는 공급과잉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고숙련 전문 인력의 부족은 올해 하반기 IT 기업의 인력 채용 동향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온라인 리쿠르팅 회사 잡코리아(http://www.jobkorea.co.kr)의 김화수 대표는 “하반기 IT 업계의 인력 채용 공고를 분석한 결과 기술인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은 전체의 74%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경력사원을 요구하는 기업이 67%를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IT 전문 헤드헌팅 업체 이피플컨설팅(http://www.epeoplecon.com)의 김준희 대표도 “관련업계에서 팀장급 기술인력을 요청하고 있지만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특히 최근의 기술 인력들은 자신의 경력개발을 위해 일반 닷컴 기업보다는 솔루션 개발회사에 취업의사를 밝히고 있어 IT 업계내에서도 불균형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IT 인력 시장은 ‘스팟 마켓’

리눅스 기반의 메일 솔루션 개발업체 M사는 최근 심각한 경영 위기를 맞았다. M사가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프로젝트의 총괄 팀장이 갑작스레 그만두면서 자금유치와 실리콘밸리 진출 등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리눅스 경력 5년차인 K 팀장은 프로젝트 완료를 불과 2주일 남겨 놓고 부모님의 병환을 이유로 1주일 휴가를 얻었다. 그러나 1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일정이 촉박해 팀원들끼리 마무리 작업을 추진했지만 결과는 프로젝트 실패. 결국 투자유치 실패와 기존 인력들 마저 하나둘 회사를 떠나고 이 회사의 사장은 자살까지도 생각했다. K 팀장은 연봉 1,500만원을 더 받고 경쟁사로 자리를 옮긴 것.

이처럼 고숙련 전문가의 부족은 IT 인력들의 몸값만 비정상적으로 상승시키면서 업체간 갈등을 야기시키고 있다. 전문인력이 시장에 원활하게 공급되지 못하자 업체들은 사람 빼가기로 그 공백을 메우고 있기 때문. 특히 최근의 IT 인력시장은 필요한 인력을 시장에서 즉각적으로 조달하는 ‘스팟마켓(Spot Market)’경향을 보이고 있다. 숙련기술을 가진 사람을 기업이 직접 양성하기보다는 시장에서 조달 받는 것이 이직이나 시간상의 불이익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표> 고용관계의 스펙트럼
IT 확산에 따른 단기적 고용관계로의 움직임----------->
 평생고용취업능력자유계약숙련스팟시장사례전통적고용계약오늘날의관행건설영화산업guru.com파견업체기간10년 이상몇년몇 달/일몇 시간/분지배형태내부기업절차제도적규칙에 의해조정되는 시장스팟시장(spot market)
 자료제공 : 한국노동연구원

한국노동연구원(http://www.kli.re.kr)의 전병유 박사는 “IT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경쟁 요소는 시간”이라며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과 프로젝트 데드라인을 맞추기 위해 IT 기업들은 기업내 숙련 인력을 직접 양성하기 보다는 적절한 숙련을 가진 적절한 사람을 외부시장에서 조달하는 ‘스팟마켓’에 의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기존처럼 전통적인 고용형태에서는 인력채용에 기업이 주도권을 행사하지만 IT 산업처럼 높은 숙련도를 필요로 하는 스팟마켓에서는 주도권이 철저히 개인에게 주어져 있다”고 밝혔다.

온라인게임개발업체 마리텔레콤(http://www.maritel.com)의 장인경 사장도 “요즘엔 회사가 사람을 고르는게 아니라 구직자가 회사를 골라가는 상황” 이라며 “모든 선택권이 입사를 희망하는 사람에게 넘어갔다”고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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