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대표선수 바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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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밸리의 무게 중심이 닷컴 기업에서 인터넷 인프라 업체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의 새너제이 머큐리지는 최근 첨단 벤처기업들의 요람인 실리콘 밸리(SV) 의 변화상을 이렇게 진단했다.

실리콘 밸리와 정보기술(IT) 산업의 트렌드를 살피기 위해 최근 6개월간 매출 실적 등을 토대로 SV 1백50대 기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e-비즈니스의 하드웨어격인 인터넷 인프라 업종이 급부상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반면 닷컴 열풍을 타고 콘텐츠.전자상거래 서비스 등을 제공하던 기업들은 경쟁 격화, 수익모델 부재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가 인포메이션 그룹의 롭 엔데레 부사장은 "개인용 컴퓨터의 성능이 크게 향상되면서 느린 인터넷 접속 속도가 핵심 과제로 등장했다" 며 "네트워크의 병목 현상을 없애주는 솔루션을 개발.제공하는 업체들의 주머니로 현금이 몰릴 것" 이라고 말했다.

SV의 초고속 인터넷 접속 및 관련 장비 업체들은 올 들어 자고 나면 쑥쑥 성장하는 호황기를 구가하고 있다.

인터넷 백본망(기간망) 에 쓰이는 라우터를 생산하는 주니퍼 네트웍스는 스프린트.MCI월드컴 등으로부터 주문이 폭주하면서 상반기에만 5백40%라는 기록적인 매출 신장세를 보였다.

설립된 지 2년이 채 안된 주니퍼는 현재 시장 점유율을 24%까지 끌어올리며 공룡 기업 시스코 시스템스(점유율 70%) 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미 최대의 광대역 인터넷 서비스 업체인 익사이트앳홈은 같은 기간 매출이 지난해(9천5백달러) 보다 세배 가량 증가한 2억8천1백만달러를 기록, 순위가 26계단이나 뛰어올랐다.

콘텐츠 사업자들에게 안정적이고 빠른 속도로 웹 호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엑소더스 커뮤니케이션스도 매출이 네배 가량 증가하는 특수를 누리고 있다.

SV 관계자들은 인터넷 접속량이 4~6개월마다 두배로 늘어나는 추세를 감안할 때 이들이 당분간 파죽지세의 고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인터넷 단말기.첨단 디지털 제품에 쓰이는 소형 칩을 생산하는 업체들도 IT 인프라 시장의 총아로 떠오르고 있다.

디지털 비디오 디스크(DVD) .MP3플레이어 등에 들어가는 플래시 메모리칩 생산업체인 실리콘 스토리지 테크놀로지(SST) 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매년 수익이 들쭉날쭉했지만 올해는 물량을 다 소화해 낼 수 없을 정도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반도체 관련 업체들도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반도체용 절연 물질을 만드는 노벨루스의 마케팅 책임자 밥 클리모는 "생산 설비가 칩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고민할 정도" 라고 말했다.

인터내셔널 데이터 코퍼레이션(IDC) 에 따르면 인터넷 등 휴대용 단말기에 쓰이는 칩 시장은 2002년에 미국에서만 2천7백여만개로 예상돼 PC용 수요 2천4백여만개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와함께 칩.네트워크 시장의 덩치가 커지면서 크레던스 시스템스와 같은 장비 테스트 업체들도 반사 이익을 얻고 있다.

실리콘 밸리의 벤처 기업인들은 "닷컴 기업들이 나름대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지만 최근 IT산업의 큰 움직임은 무선 인터넷.네트워크 등으로 대표되는 커뮤니케이션스 업종이 주도하고 있다" 고 말한다.

그러나 인프라 구축도 결국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닷컴 기업들의 성장을 전제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두 측면의 균형 성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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