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MLB 시간탐험 (14) - 헬멧을 쓴 남자, 존 올러루드

중앙일보

입력

1989년 9월 3일 당시 스카이 돔에 모였던 관중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날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루는 새내기 1루수 존 올러루드(현 시애틀)가 헬멧을 쓴 채 수비에 나왔기 때문이다.

'풋내기라 아직 정신이 없군.'
'저런 식으로 주목을 끌려 하다니.'

하지만 올러루드가 헬멧을 쓰게 된 동기는 단순한 해프닝이나 계획된 쇼맨십이 아니었다.

위싱턴 주립대학 당시 투타에서 빼어난 활약을 했던 올러루드는 대학 3학년이던 1988년 홈에서 포수와 크게 부딪친 후 기절을 하고 말았다. 병원으로 실려간 올러루드는 정밀검사 과정에서 뇌에 동맥류(aneurysm : 일종의 동맥 혈관 장애)가 있음이 발견됐고 89년 1월 동맥류 제거수술을 받았다.

그해 7월 아마추어 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올러루드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지명됐고, 메이저리그 역사상 16번째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선수가 됐다. 그후 지금까지 올러루드는 마이너리그의 눈물 젖은 빵을 한번도 먹지 않았다.

수술은 성공리에 끝났지만, 아직 회복단계에 있었던 올러루드는 '라인 드라이브 타구를 맞으면 즉사한다'라는 공포에 시달리게 됐고, 결국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수비시에도 헬멧을 쓰고 나가기 시작했다.

현재 올러루드의 상태는 헬멧이 필요없을 정도로 완치됐지만, 이제 헬멧은 그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91-93년 토론토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올러루드는 뉴욕 메츠(97-99)를 거쳐 지금은 고향인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뛰고 있다.

헬멧을 쓴 1루수라면 더우기 공을 두려워하는 야수라면 좋은 수비를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올러루드는 오마 비즈켈(유격수, 클리블랜드)에 비견될 정도로 '발레리나 급'의 부드러운 수비력을 갖고 있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1루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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