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이 운명을 말한다면 시인은 긍정을 노래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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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장석주 시인은 2000년 서울을 떠나 경기 안성시 금광면 오흥리에 정착했다. “시골에서 지내면서 내 안의 온갖 독성을 덜어냈다. 몸도 생활도 시도 다 바뀌게 된 계기”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를테면 문학적 고수(高手)의 대화법이란 이런 것이다.

 - 『주역』을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집에 기르는 개지요.”

 - 가까이 있다는 말인지요.

 “『주역』을 안다고 하면 가짜입니다. 모른다고 하면 어리석은 것이지요.”

 - 알쏭달쏭한 거로군요.

 “『주역』은 어려운 것도 아니고 접근하지 못할 것도 아니에요.”

 아, 뭔가를 어지럽히는 대화다. 동양고전 『주역』(周易)을 기반으로 쓰인 시집 『오랫동안』(문예중앙)을 펴낸 장석주(57) 시인. 그는 대화의 기술마저 주역을 닮았다. 간명하나 원리를 꿰뚫고, 그러면서도 상대를 품는 대화법이다.

 장 시인은 2003년부터 『주역』을 파고 있다. 그런데 『주역』이 무엇이냐 물으면, 알듯 말듯한 대답만 늘어놓는다. 선문답을 닮은 이 대화법 덕분에 상대편은 텅 빈 사유의 공간을 얻는다.

 장 시인은 『주역』을 8년쯤 읽고 보니 “지식의 몽매함을 깨닫게 된다”고 했다. “앎이란 작은 모름에서 큰 모름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도 했다. 그러니까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게 진짜 앎이라는 게다.

 그래서 이런 시집이 나왔다. 그는 『주역』을 탐구하며 내내 지식을 비워내는 기쁨을 체험했는데, 그 때문에 해설서가 아닌 시가 쏟아졌다. 그는 “『주역』을 읽으면 읽을수록 해석의 무가치함을 깨닫게 됐다. 머리의 해석이 아니라 몸의 시로 그 체험이 나온 이유”라고 말했다.

 - 『주역』이 시작(詩作)의 배경이 된 까닭은요.

 “지식과 인식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주역』이란 조그만 나룻배를 구해 삶이라는 긴 강을 흘러 다녔어요. 이 시집은 그 흔적들이고요.”

 시집에는 장 시인이 주역을 토대로 쓴 55편의 시가 실렸다. 각 시마다 ‘주역시편’이란 부제와 임의의 번호가 매겨져 있다. 이 또한 『주역』의 원리를 토대로 부여된 것들이다.

 시인이 『주역』과 씨름하여 시에 아로새긴 것은 삶에 대한 긍정의 표정이다. 『주역』이 운명에 관여하는 것이라면, 그 운명에 필연적으로 맞서는 삶의 의지를 긍정하는 태도다. 그 대표적인 시가 ‘달 아래 버드나무 그림자’다(왼쪽 시 참조).

 이 시에선 삶을 관조하려는 자세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먼저 얼어버리면 얼 일이 없고, 이미 늦고 난 뒤엔 늦을 일이 없다. 죽음 또한 마찬가지. 우리가 죽고 나면 죽음 자체가 사라지는 것 아닌가. 이 웅숭깊은 사유의 끝은 삶에 다다른다. 죽음마저 초월하는 터에 삶이란 게 대수겠는가. 그래서 이런 긍정의 노래가 나온다. ‘살면 살아지네.’

 간혹 시를 제작하는 시인들이 있다. 그런 태도는 그 자체로 존중받을 만 하다. 하지만 기획된 시적 감동이란, 아무래도 속 보이는 짓이다. 장석주는 어느 편이냐면, 시를 툭 하고 내뱉는 시인이다. 그는 “억지로 만들지 않고 시적 에너지가 덩어리째 쏟아진 시가 좋은 시”라고 했다.

 ‘…/3할 7푼을 치는 타자에게는 3할 7푼의 연봉,/타석에 서지 못한/연습생 타자에게는 연습생의 고독이’(‘좀비들’) 있듯, 장석주에겐 문학적 고수의 문기(文氣)가 흐른다.

김경희 기자

◆주역(周易)=중국 주(周) 나라의 점술서로 이용됐던 책이다. 주의 문왕(文王)·주공(周公)·공자(孔子) 등을 거쳐 완성된 동양의 대표적인 고전으로 우주 만물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훗날 철학적·윤리적 색채가 강조되며 유교 경전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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