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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임종의 질 32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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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경북에 사는 윤모(66)씨는 지난해 1월 말기 신장암 판정을 받았다. 서울의 큰 병원에서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가족과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라 혼자 고통스럽게 지내다가 지난해 10월 날씨가 추워지면서 지인의 도움을 받아 수도권의 요양원으로 옮겼다. 요양원이 진통제를 놔주긴 하지만 말기환자 관리 전문가들이 아니어서 통증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2010년 암으로 숨진 사람은 7만2046명이다. 말기암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서비스는 통증 조절이다. 항암 치료는 별 의미가 없다. 통증을 조절하면서 인생을 정리하는 게 중요하다. 전문가의 상담을 받거나 명상·요가 등을 통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 이런 서비스를 통틀어 완화의료(호스피스)라고 한다.

 말기암 환자 중 완화의료 서비스를 받는 사람은 9%에 그친다. 윤씨처럼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람도 32.4%나 된다. 40.7%는 홍삼·버섯 등의 식이요법이나 대체의료에 의지한다. 국립암센터가 암 사망자의 유족 1664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다.

 말기암 완화의료 서비스는 전국 44개 기관(725개 병상)에서 제공한다. 국립암센터 호스피스완화의료사업과 최진영 연구원은 “완화의료 선진국인 영국은 인구 100만 명당 50개 완화의료 병상을 갖고 있다”며 “이 기준을 적용하면 우리는 2500개 병상이 필요한데 현재 29%밖에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병원 허대석(혈액종양내과) 교수는 “병상이 부족한 데다 연명치료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여전해 ‘죽음의 질’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말기암 환자 통증 관리에는 마약성 진통제가 쓰인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한국 국민 1인당 모르핀 사용량은 1.2㎎으로 세계 62위다. 1위 오스트리아는 153.4㎎이다. 서울대병원 허 교수는 “마약성 진통제는 대부분 말기암 환자들이 사용하는데 사용량이 적다는 것은 환자들이 그만큼 고통 받다가 숨진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 자선단체인 린 재단에 따르면 한국의 임종의 질은 세계 32위로 조사됐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전국 44개 완화의료 전문기관에 23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아주대병원이 추가됐다. 내년에는 일반 병원도 요건을 갖추면 말기암 환자를 대상으로 완화의료를 할 수 있도록 건강보험 수가(酬價·의료행위의 가격)를 내놓을 계획이다.

◆완화의료(호스피스)=말기암 환자의 통증과 증상을 줄이고 신체적·심리적·영적 영역을 포괄적으로 평가해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질병 치료가 아니라 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 향상이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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