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2단계 구조조정 매듭에 속도 높여

중앙일보

입력

정부가 내놓은 2단계 금융구조조정의 초점은 부실기업 정리에 맞춰져 있다.

기업부실이 은행 부실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차단해야만 제대로 된 금융구조조정을 해낼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속도도 내고 있다. 당초 내년 2월로 예정했던 금융구조조정을 연내에 모두 마무리짓기로 했다.

이는 지난 22일 정부가 10조원안팎일 것이라던 당초 예상을 넘어 40조원의 공적자금을 추가 조성하기로 한 것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구조조정에 쓸 '실탄' 을 충분히 확보해놓고 살릴 기업과 금융기관을 확실히 가려 내 구조조정을 가능한 빨리 매듭짓겠다는 전략이다.

대신 공적자금 투입은 이번이 마지막이란 전제를 달았다. 앞으로 부실기업이나 금융기관은 철저히 시장원리에 의해 퇴출되도록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부실기관에 투입된 공적자금의 조기회수를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책임소재도 분명히 가리기로 했다.

◇ 기업 수술없이 금융구조조정 안된다〓정부는 1차 금융구조조정이 실패한 이유를 대우사태에 돌리고 있다.

1998년 대우그룹의 부실을 덮어둔채 은행 구조조정을 추진했다가 이제와서 은행 구조조정을 되풀이하게 됐다는 판단에서다.

이번 금융구조조정 청사진이 달라진 점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나 법정관리.화의업체 외에 '부실징후기업' 까지 가려내 처리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금융불안을 핑계로 쉬쉬해왔던 재벌기업의 자금난까지도 그냥 덮어놓고 넘어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부실기업처리는 10월까지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래야 최종 목표인 연내 금융구조조정이 가능하다.

이을 위해 우선 부채비율 2백%를 달성한 30대그룹은 다음달말까지 주채권은행이 재평가, 재무상태가 나쁘다고 판단되면 자구노력과 손실분담을 조건으로 신규자금을 지원하는 재무구조개선 특별약정을 맺게 했다.

부채비율 2백%를 맞춘 30대이하 그룹이나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이행치 못한 그룹 가운데 자금난에 빠질 우려가 있는 기업도 자구노력을 전제로 자금지원을 해주는 내용의 '여신거래특별약관' 을 맺도록 할 방침이다.

여신거래특별약관에는 일정수준 이상의 부채비율 목표 달성과 자구노력 계획.계열사 담보제공 및 채무보증 제한.신규사업 진출시 채권은행과 사전 협의 등의 내용이 포함된다.

자금난에 몰려있는 재벌기업도 다음달중 주요 채권단의 출자전환 등 회생방안을 검토해 회생 가능성이 있으면 지원을 해주되 그렇지 않으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로 신속히 처리키로 했다.

앞으로는 기업의 신용도를 채점, 금리를 차별 적용토록 제도화하기로 했다.

부실기업은 아예 시장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부채비율이 2백%를 넘는 기업은 우대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없도록 하고, 현금흐름이나 미래의 수익가치까지 따져 기업의 실력별로 금리기준을 만들기로 했다.

이를 위해 금감위는 연내에 기업 지원금리 기준을 만들고 은행별로 이 기준에 따라 기업을 평가, 차별금리를 적용토록 할 방침이다.

◇ 제2금융권도 다시 본격 수술〓이미 2조원의 공적자금이 들어갔지만 아직도 부실을 털어내지 못한 대한생명에 1조5천억원을 추가 투입, 국내외 매각을 재추진한다.

지급여력 비율이 1백%에 미달하는 럭키.한일생명, 리젠트화재 등은 9월말까지 자구노력을 지켜본 뒤 미흡하면 10월중에는 적기시정조치를 발동할 예정이다.

정상 영업중인 5개 종합금융사는 기업어음(CP)시장 등에서 나름대로 역할이 있기 때문에 1~2개 대형사는 남기되 나머지는 은행.증권사와 합병, 업종을 바꾸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또 중소형 금융기관은 우량금융기관이 부실 금융기관을 선별 합병, 대형화를 유도하기로 했다.

내년부터 예금부분보장제가 도입되면 중소형 금융기관은 갈수록 설자리가 없어지고 부실우려가 높아지는 만큼, 이들의 부실이 다시 은행 등으로 이어지는 금융불안의 연결고리를 끊겠다는 뜻이다.

◇ 은행 통합, 이르면 10월중 시작〓공적자금 투입은행을 빠르면 11월중 금융지주회사로 묶기로 했다. 내년 4월에나 가능할 것이라던 당초 예정보다 크게 앞당긴 것이다.

정부가 먼저 합병바람을 일으켜 시장에서 우량은행들이 합병을 안하고는 못배기게 유도한다는 전략이다.

금감위 관계자는 "우량은행간 통합이나 우량은행과 공적자금 투입은행간 통합 등을 통해 연내 최소한 2개의 초대형 선도은행 탄생이 가능할 것" 이라며 "초대형 은행은 자산규모로 세계 50위권 수준이 될 것" 으로 전망했다.

이같은 정부 계획에도 불구하고 금융구조조정의 연내 마무리가 실제로 가능할지는 점치기 어렵다.

부실징후 기업의 퇴출이 정부 예상보다 많아질 경우 또다시 은행 등 지원자금 부족이 생길 수 있는데다 노조 반발 등 구조조정을 가로막는 요인들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주가와 금리 등 금융지표들의 불안한 움직임이 구조조정 작업을 교란시킬 가능성도 여전하다.

금융계 관계자는 "과거에도 숱한 청사진을 내놨지만 시장불안.노조반발 등을 이유로 번번히 시기를 놓치거나 방향이 틀어졌다" 며 "정부 청사진의 방향은 옳으나 기업.금융기관의 통합.퇴출과정에서 생길 반발을 어떻게 처리하고 계획대로 실천하느냐가 문제" 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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