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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학교폭력 추방, 이제는 실천만 남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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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해 12월 대구 중학생 권모군의 안타까운 자살 사건을 계기로 전 국민적인 관심사가 된 학교폭력 문제에 대해 정부가 어제 종합대책을 내놨다. 학교폭력은 아무리 사소한 괴롭힘이라도 범죄라는 인식 하에 학교가 중심이 돼 이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엿보인다. 90여 개의 예방적 대책과 치료적 처방이 백화점 식으로 나열돼 있고,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지 못한 점은 대책의 실효성 측면에서 볼 때 못내 아쉽다.

하지만 김황식 국무총리의 말처럼 대책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어린 학생들이 폭력 앞에서 더 이상 절망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일은 정부만 대책을 내놓아 저절로 풀릴 일은 아닌 것이다. 이로 볼 때 가정을 비롯해 사회 각 분야의 지속적인 관심과 실천이 뒤따라야 하는, 어찌 보면 더욱 지난(至難)한 일이 우리 앞에 남아 있다.

 무엇보다 교육당국과 교단의 자성과 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끊임없이 갈등해온 구태에서 벗어나 최소한 학교폭력 근절이란 어젠다에 대해서는 일치된 견해와 행동을 보여야 한다. 일부에서는 경쟁 위주의 교육시스템과 학벌 사회가 해체되어야 폭력이 근절될 수 있으며, 이 문제를 회피하는 대책은 모두 미봉책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형사처벌을 강화해야 폭력 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견해는 일견 타당하나 얽힌 실타래를 한 방에 풀 수 있다는 성급함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순서를 밟아가며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가는 게 세상의 순리다.

 이를 위해 문제 해결의 시동을 건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시·도교육감들과 더불어 학교폭력에 공동으로 대처한다는 열린 자세를 보여야 한다. 정부가 아무리 대책을 내놓아도 시·도교육청이 도와주지 않고서는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건 자명한 일이다. 교원단체와 노조도 학교폭력 문제에 관한 한 훈수꾼의 모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들 단체가 교사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큰 만큼 이번 대책이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정부 종합 대책은 1995년 이후 몇 차례나 나왔으나 그동안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각종 대책이 수렴되는 지점에 있는 학교 교사, 학교장들이 오히려 대책에서 소외된 탓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지금 필요한 건 단 한 명의 학생도 놓치지 않겠다는 교사와 학교의 열정을 살리는 일이다. 이 열정이 사그라지지 않게 사회 각계가 지켜보고 지원한다면 폭력 근절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