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원한다면, 도둑처럼 물밑작업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6면

[사진=박종근 기자]

그 희귀하다는 순정 마초가 이곳엔 있다. 다들 한다는데 나만 어려운 어장 관리, 그게 뭔지 알고 싶다면 이곳을 엿보면 된다. 지난해 3월 문을 연 애정촌(SBS ‘짝’ 매주 수요일 밤 11시15분)이다. 일주일 남짓한 기간에 남녀 10여 명이 이곳을 찾는데 목적은 오직 하나다. 서로 이름 대신 ‘여자1호’ ‘남자2호’ 등으로 부르며 평생 함께할 짝을 찾는 것.

 카메라에는 이들이 줄다리기하는 과정이 가감 없이 담긴다. 오매불망 여자 1호만 바라보던 남자가 여자의 질투심을 자극하기 위해 갑자기 여자 3호를 선택하는가 하면 여기저기 밑밥만 던졌다가 결국 모두에게 버림받는 이도 있다. 이렇게 담긴 출연자들의 모습을 훔쳐보는 재미, 꽤 쏠쏠하다. 매 방송이 끝날 때마다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 ‘짝’과 관련된 말들이 올라온다. 해가 바뀌었지만 10%에 가까운 시청률도 여전하다.

이쯤 되면 대체 이 애정촌을 맡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진다. 이름은 남규홍(47). 고려대 법대에서 고시를 준비하다 때려치우고 좀 더 재미있어 보이는 PD를 하게 됐단다. 최근 탐구하는 것은 ‘한국인의 욕망’. SBS스페셜 ‘나는 한국인이다’ 시리즈를 만들었다. 2009년엔 ‘인터뷰 게임’으로 ‘한국PD대상 실험정신상’을 탔다. 최근엔 『짝』이라는 동명의 제목으로 프로그램 뒷이야기를 담은 책도 냈다. ‘애정촌 촌장’인 남규홍 PD를 만났다.

만만하지 않은 출연자 선발 과정

인기 프로그램 ‘짝’의 도시락 파트너 찾기 장면.

●자신의 지질한 모습까지 모두 드러나는데도 프로그램에 나오려는 사람들이 꾸준히 있다. 왜일까.

 “보통 TV에는 일반인의 평범함을 넘어서는 특별한 사람들이 나온다. 그래서 엄청난 재주가 없다면 TV에 나갈 용기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짝’은 기기묘묘한 재주를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용기와 호기심이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누구나 이성에 관심이 있지 않나. 그러니까 나오는 거다. 또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하고자 하는 목적, 방송에서 얻은 유명세가 사회생활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 등 목적은 다양하다. 이런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지금까지 홈페이지에 출연 신청한 사람이 5000명을 넘어섰다.”

 어찌 됐든 출연자들의 1차 목적은 동반자를 찾는 것. 그리고 이 리얼리티 쇼를 만드는 남규홍 PD의 목적은 “짝을 찾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심리를 면밀히 쫓는 것”이다. 짝을 찾게 도와준다지만 심리를 보여주려니 출연자의 각기 다른 개성도 잘 드러나야 하고, 인물들끼리 갈등도 보여줘야 한다. 사람들 관계에서 오는 극적 효과가 중요하기 때문에 출연자를 뽑는 과정도 만만하지 않다.

●출연자 선발 기준은.

 “애정촌에 입소하는 한 기수(10~12명)를 뽑으려면 최소한 100명은 면접해야 한다. 그렇게 11개월 동안 2000명 넘게 만났다. 일단 매력도를 본다. 애정촌에서 보여줄 자신만의 캐릭터가 있어야 한다. 물론 짝을 찾고자 하는 진정성도 중요하고. 그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느끼는 건, 인간은 정말 어려운 동물이라는 거다. 개나 고양이는 습성대로 행동하지만 인간은 도통 알 수 없다. 정말 괜찮다고 생각해 뽑은 출연자에게 실망하는 경우도 많고.”

짝 찾기 과정 통해 발견하는 ‘진짜 나’

●실망할 때라니.

 “본래 자기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때다. 제작진하고 신경전을 벌이면서 본인 이미지 관리만 할 때 무척 실망한다. 모두 짝을 찾기 위해 상대방을 탐색하지만 사실 그 과정에서 출연자가 정작 알아내는 건 ‘진짜 나’인 경우가 많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명확히 보이는 ‘나’ 말이다. 그런 기회를 주는 건데, 활용하지 못하는 이들을 보면 실망스럽다. 현장에 제작진이 거의 개입하지 말자는 게 우리의 철칙이기 때문에 끼어들 수도 없고.”

●제작진이 개입하는 부분은 어디까지인가.

 “사실 제작진은 출연자들과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잘못 말을 걸면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 그런데 표현을 안 하면 사람 속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인터뷰를 하는 거다. ‘저 명랑하던 여자가 갑자기 왜 시무룩할까’ 하는 궁금증이 들면 카메라가 슬쩍 다가가서 물어본다. ‘왜 그러느냐’고. 처음에는 어색해 잘 말하지 않던 이들도 하루 이틀 지나면 얘기한다. 우리 개입은 그 정도까지다.”

●인터뷰를 보면 감정을 잘 보여주지 않던 여자들도 말을 잘하더라. 무슨 묘수라도 있는 건가.

 “동물의 세계에서도 그렇지만 구애를 적극적으로 하는 건 보통 남자 쪽이다. 본능이고 본성인 거다. 애정촌에서도 기본적으로 남자들이 훨씬 더 적극적으로 나온다. 그런데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여자들이 감정이 없느냐 하면, 그게 아니다. 내가 애정촌을 설계할 때 생각한 건 딱 하나다. ‘인간은 목적이 있으면 움직인다’는 것. 사람이 바다를 건너야 한다고 마음을 먹으면 그 방법을 연구하게 돼 있다. 목적을 던져놓으면 남자든 여자든 움직이게 돼 있다. 그래서 사회에서 소극적인 여자들도 ‘목적’이 던져진 애정촌에 들어온 이상 어떻게 됐든 표현을 할 수밖에 없는 거다. 특별한 묘수라면 ‘목적’을 던졌다는 거겠지.”

 그렇게 목적만 던져놓고 그가 관찰한 남녀는 얼추 300명 가까이 된다. 수많은 남녀가 마음을 나누는 과정을 밀착 관찰했을 테니 아마도 알 수 있을 것 같아 물었다.

●그래서 짝을 만나려면 대체 어쩌란 말인가.

 “SBS스페셜 ‘출세만세’를 만들며 출세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준비’를 꼽았던 적이 있다. 짝을 만나려면? 정답은 없지만 ‘표현’이 제일이다. 제작진이 도시락 같이 먹고 싶은 사람을 수시로 선택하게 하지 않나. 그때 어쩔 수 없이 자기 마음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데, 그 단 한 번의 표현으로 굉장히 많은 일이 벌어진다. 마당에 멍석을 깔아주고 표현하게 하면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진다. 밤도둑처럼 물밑 작업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 그게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인 것 같다. 감정이라는 건 식물처럼 커가는 거다. 모호했던 관계에서도 감정을 표현하고 전하다 보면 없던 감정도 생기게 마련이다. 선물도 이벤트도 좋지만 가장 좋은 건 ‘말’이다. 아주 죽이는 말.” 

프로그램마다 파격 시도하는 남 PD
“100명이 동쪽 가면 난 서쪽으로 … 따라하기 정말 싫다”

‘짝’은 일반인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제작진이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종종 생긴다. 방송 후 출연자의 사생활을 둘러싼 논란은 그나마 낫다. “애정촌에 들어와서 음담패설을 계속 한다든지….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돌려보낸 적도 몇 번 있어요. 촬영 초반 이틀은 항상 초긴장 상태죠.”

 얘기를 나누다 보니 궁금증이 목까지 차오른다. 매주 ‘짝’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정작 그의 ‘짝’과 어떻게 살고 있을까. 실례를 무릅쓰고 물었다. 그가 눈을 한 번 굴렸다. 몸을 앞으로 당기더니 대뜸 루소 이야기를 한다.

 “고전 『에밀』 아시죠? 교육에 대한 거룩한 얘기. 그거 쓴 루소가 가정 파탄에 이르렀어요. 진지하게 교육을 논하면서 자기 자식은 엉망으로 키우고…. 그런 거랑 비슷해요. 본인도 잘 못하면서 남 문제나 들추는 거죠.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그건 핑계일 수도 있고요.(웃음)” (그는 딸 셋을 둔 평범한 아빠다.)

 다행인 걸까. 자신의 짝에게 소홀했다던 시간 동안 그가 만들어낸 작품은 매번 ‘신선하다’는 평을 받아왔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이웃을 인터뷰하는 모습을 담아낸 ‘인터뷰 게임’부터 최근의 ‘짝’까지. 매번 ‘파격’을 시도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저는요, 프로그램할 때 ‘재탕’이 제일 싫어요. 따라하는 게 정말 싫어요. 100명이 동쪽으로 가면 저는 서쪽으로 가요. 태생적으로 그렇죠. 남들이 안 보는 거, 구경하지 못한 걸 보여주고 싶어요. 거기에 집중하죠. 책도 많이 읽어요.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프로그램 만들 때도 1년에 100권 이상 읽었으니까…. 그런데 책 보고 영화 보는 건 기본인 것 같아요. 중요한 건 ‘고민’하는 거죠. 그 문제를 풀어보려고 계속 고민하다 보면 답이 나와요. 저도 새로운 프로그램 만들려고, (짝) 포맷이 정해진 지금도 매회 다르게 만들려고 고민해요 매일. 하다못해 도시락 선택하는 방법이라도 다르게 하려고 하죠.”

 그렇게 24시간 ‘짝’에 매달려 늘 새로움을 연구하는 그에게 요즘 고민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짝’의 포맷을 해외에 팔려고 해요. 일본에서는 벤또로, 아프리카에서는 바나나로 도시락 선택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재미있잖아요? 포맷이 수출되는 거, 지금 우리 방송환경에서 찾을 수 있는 돌파구라고 생각하니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