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기사 다 썼는데 엠바고 요청 … 감사원의 꼼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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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석
JTBC 정치부문 기자

나는 1년차 기자다. 그래서 서툴지만, 그래서 끈질기기도 하다.

 감사원 취재를 시작한 건 대입 농어촌특별전형 부정 감사가 세간의 관심을 끈 지난달 25일부터다. 당시 모든 언론이 이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속보는 없었다. 나는 더 파고들었다.

 취재 네트워크가 변변치 않았기에 방법은 단순했다. 감사원의 조사를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대학들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어떤 서류를 제출했느냐”고 물었다. 그러기를 며칠. 다행히 지난달 30일 감사원이 대학 편입학 부정도 감사했다는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얘기를 바탕으로 다시 한번 집중 취재를 한 지난달 31일 오전 8시쯤이었다. 내용을 알 만한 사정당국 관계자들의 명단을 뽑아놓고 전화를 돌렸다. 마침내 단서 하나를 건질 수 있었다. 6시간 만이었다. 유명대 편입생 10명 가까이가 부정행위로 적발됐다는 것이었다.

 첫 단추를 끼우고 나니 취재에 속도가 붙었다. 기자가 내용을 알고 질문하면 사정 담당자들이라도 마냥 잡아떼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줄줄이 정보가 나왔다. 부정 편입학 의혹을 받는 대학이 3곳으로 모두 서울 소재 유명 대학이라는 팩트, 체육특기생 부정 입학도 적발됐다는 팩트들을 건질 수 있었다.

 이렇게 쌓인 정보를 꿰 기사로 쓴 것은 오후 3시를 넘겨서였다. 물론 기사를 쓰기 전 편입학 부정 적발과 관련해선 감사원의 ‘엠바고(embargo·보도유예)’ 요청이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 오후 5시20분에 감사원 공보관실 직원이 전화를 걸어와 딴소리를 했다. “대학 감사 내용을 취재하신다고 들었는데 내일(1일) 오후 2시로 엠바고 걸었으니 참고해 달라”고 했다. 말이 “참고해 달라”지 ‘보도를 하지 말라’는 뜻으로 들렸다. 감사원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JTBC와 중앙일보는 보도를 내보냈다.▶<본지 2월 1일자 6면> 검토를 거쳐 감사원의 엠바고 요청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엠바고는 취재원이 사전에 내용을 설명하면서 보도를 유예해 달라고 요청하고, 이를 모든 언론사가 받아들여야 효력을 갖는다. 물론 그 전제는 보도유예가 공익에 도움을 주는 경우에 한해야 한다.

 1년차 기자도 알고 있는 이런 엠바고의 조건을 감사원 공보관실이 몰랐을 가능성은 없다.

 결국 감사원은 취재를 모두 마친 기자에게 일방적으로 엠바고를 통보해 보도 통제의 수단으로 악용하려는 의도였다고밖에 볼 수 없다.

 감사원의 이런 조치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보도지침을 떠올리게 한다.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이윤석 JTBC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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