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극단 '끼판' 창단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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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장애여성은 여성이기 이전에 장애인으로 치부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적으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편견을 고스란히 겪는 이중적인 존재다.

'신체기관이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라는 사전적 시각에서 바라볼때 장애여성은 결코 여성스럽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알게 모르게 장애여성을 '제3의 성'으로 인식하고 있다.

국내 최초의 장애여성극단 '끼판'은 이런 사회의 편견에 맞서는 장애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단체다.

지난 7월 장애여성인권센터의 문화공연사업의 일환으로 창단됐다.

'끼판'은 비장애인 중심의 문화에 적극적으로 '끼어들어'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판을 벌리자'는 의미. 연구조사나 세미나·워크숍 등에만 머물러있는 장애여성운동을 연극이라는 매개를 통해 활성화시키자는 취지다.

극단은 10월1일 과천시 중앙공원 색동무대에서 창단공연을 한다.

〈몸짓 하나, 나는 나〉. 과천마당극제 자유참가작이다. 지난달 12일 공개오디션에서 뽑힌 장애여성 네명이 전문배우 두명과 함께 출연한다.

대학생인 김지혜(23)씨와 강은진(21)씨는 휠체어에 앉아 생활하고, 자원상담가로 활동중인 이미경(32)씨는 어릴적 급체로 마비증상을 겪은뒤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갖고 있다.

영어관리교사인 용태숙(31)씨 역시 네살때 교통사고로 오른팔을 잃었다.

이들 네명이 한 무대에 서기까지는 아픔도 많았다. 오디션장에까지 왔다가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며 돌아선 사람, '집안망신'이라는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혀 중도포기한 사람….

극단 대표 김미연(35)씨는 "장애여성이 대중앞에서 자신의 몸을 드러내고 연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결심이었다. 작품 제목도 '지금 이대로의 모습에 자신감을 갖는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김대표는 항상 우울하고 불쌍한 장애인의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작품속에 건강하고 밝은 장애인의 모습을 담았다.

배경은 마네킹공장의 수선실. 각각 하자가 있는 불량마네킹들이 수리공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관리자, 마네킹과 교감하는 수리공이 마네킹을 놓고 벌이는 해프닝을 그렸다. 화려한 쇼윈도에 서지 못하는 불량마네킹들을 통해 장애여성의 좌절과 희망을 풀어낸다는 생각이다.

극중 자신의 의수를 뽑아내는 마네킹으로 열연하는 용태숙씨는 의식적으로 호주머니에 넣었던 오른손을 요즘들어 드러내는 일이 많아졌다.

"처음엔 가족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장애여성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내 몸을 내가 사랑할줄 알아야 비로소 사회도 나를 인정해줄 수 있다"는 것이 용씨가 이번 공연을 통해 얻은 교훈이다.

연출자 장애리씨는 처음 무대에 서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대사를 최대한 줄이고 마임과 춤으로 이야기를 전개할 계획이다.

극중에선 장애라는 이유만으로 그간 무시돼온 장애인의 성문제를 함께 다루고 있다. 여성·아동학대 등 주로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활동을 해온 박인혜씨가 대본을 썼다.

각박한 사회를 대변하는 관리자로 권지숙씨, 수리공역으로 백익남씨가 출연한다. 공연시간은 약 40분. 극단은 장애복지시설 방문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02-708-4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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