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수익률 131% 낸 그녀 “유통·식음료 저평가주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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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사회 진출이 크게 늘었다지만 아직도 여성 귀한 곳이 있다. 펀드매니저 한 명당 많게는 수조원의 돈을 굴리는 자산운용업계가 그렇다. 여성의 수가 적은 만큼 주목을 끌기 쉽지만, 잘못하면 각종 핀잔이 배로 쏟아진다. 이런 상황에서 오롯이 수익률로 능력을 인정받은 여성 펀드매니저가 있다. 삼성자산운용의 민수아(41·사진) 가치주식운용본부장. 그는 지난 16일 삼성자산운용 최초로 여성 본부장에 오르며 국내 자산운용업계의 ‘여성 시대’ 개막을 알렸다. 여성 본부장의 탄생은 운용업계 전체로는 두 번째이지만, 대형 운용사 기준으로는 그가 처음이다. 민 본부장은 1990년대 후반에 운용을 시작한 1세대 여성 펀드매니저다. 그는 “당시 일을 시작한 여성 펀드매니저를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보니 나의 승진이 이슈가 된 것 같다”며 “머지않아 여성 운용본부장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국내 대형운용사 첫 여성 임원이 됐다. 소감은.

 “책임감을 느낀다. 동료·후배들이 즐겁고 조화롭게 일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다.”

 - 1세대 여성 펀드매니저인 만큼 힘들었던 점도 많았을 것 같다.

 “일하면서 남녀 차별을 의식한 적은 없었다. 오직 수익률로 평가받기 위해 애썼고, 더 노력했을 뿐이다. 예전에는 여성 펀드매니저가 거의 없어 기업 탐방을 가면 잘 기억해줬지만, 요즘은 이런 이점이 없어져 아쉽다(웃음).”

 - 지난해 대부분의 주식형 펀드가 마이너스 수익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돋보이는 수익률을 기록했다(그가 운용하는 중소형포커스펀드는 지난해 12.74%, 3년 131.58%의 수익을 기록했다).

 “시장보다는 종목 위주로 투자했다. 경기에 상관없이 자기만의 브랜드와 서비스를 갖추고, 트렌드를 선도하는 기업을 선별했다. 철저하게 종목 위주의 전략을 펼친 게 시장의 변동을 극복한 요인이었던 것 같다. 국내 중소기업 중에서도 국제 경쟁력을 갖춘 회사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대형주에 집중되는 국내 시장 특성상 좋은 회사임에도 아직까지 저평가 받고 있는 주식이 적지 않다.”

 -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3~4년 전만 해도 펀드에 담을 수 있는 종목이 자동차·조선·IT 같은 제조업 부문에 한정돼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유통·식음료·엔터테인먼트 등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회사들이 많아졌다. 타이어 업종의 예를 들겠다. 과거 한국산 타이어에 대한 평가는 ‘값이 싸고, 질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고급’이라는 이미지가 추가됐다. 이젠 미쉐린처럼 한국산 타이어도 고급으로 평가받는다. 자신의 브랜드를 갖추고, 업계의 트렌드를 선도하게 됐다는 얘기다. 이런 종목을 집중 발굴해 투자한 결과 짭짤한 수익을 얻고 있다.”

 - 다른 펀드와 차별화되는 점은.

 “중소형주 펀드라면 매매가 잦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우리 펀드는 연간 회전율이 100% 이내다. 그만큼 종목을 오래 들고 간다는 뜻이다. 펀드를 만든 뒤 4년 가까이 보유 중인 종목도 많다. 또 기업의 비효율적인 부분이 발견되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 경영진에게 이를 개선할 것을 주문하기도 한다. 경영진과는 기업의 미래와 사업 방향에 대해 계속 논의한다.”

 -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

 “숨겨진 종목을 발굴하기 위해 1주일에 3번 정도는 기업의 현장을 방문한다. 해당 기업이 구조적으로 성장 가능한 능력이 있는지, 경영진이 회사를 성장시키려는 의지가 있는지 등을 주로 살핀다. 분석할 회사는 많은데,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 지난해 8월에는 돌연 펀드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는데.

 “운용자산 1조원을 넘으면서 돈을 더 받지 않기로 했다. 그간 운용자산 1조원을 넘긴 뒤 망가지는 펀드를 숱하게 봐왔다. 펀드의 덩치가 커지면 탄력적인 대응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펀드도 자산 규모가 더 커졌다간 꾸준한 수익률을 내기 힘들 것으로 판단했다.”

 - 펀드매니저로서 힘들 때는 언제인가.

 “항상 힘들다. 수익률이 안 좋으면 당연히 힘든 것이고, 수익률이 좋아도 걱정이 앞선다. 수익률이 너무 높으면 해당 종목이 과도하게 오르고 있다는 뜻인데, 결국 주가가 언제든지 급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직 때도 되지 않았는데 매도를 고민해야 하는 게 스트레스다. 지금까지 이틀 연속 휴가를 내본 적이 없다.”

 - 올해 증시는 어떻게 보나.

 “국내 경기가 그렇게 나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글로벌 흐름상 호재와 악재가 팽팽하게 맞선 형국이다. 악재는 유럽의 재정위기, 중국의 경착륙 우려다. 하지만 이런 악재는 이미 시장에 반영돼 있다. 호재는 그간 각국이 유동성을 많이 풀었다는 점이다. 이런 유동성이 증시 쪽으로 흘러들어갈 때가 됐다.”

 - 눈여겨보는 업종이나 종목은.

 “밝히기 곤란하다. 다만 2~3년 뒤 미래 가치가 밝은 중소형 종목에 대해 투자를 늘리고 있다. 변동성을 줄이고 장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는 펀드로 운용하는 것이 목표다.”

 - 본인의 재테크는 어떻게 하나.

 “금융자산 절반 이상을 삼성자산운용 펀드에 넣고 있다. 규정상 자신이 운용하는 펀드에는 가입하지 못하게 돼있어 (수익률이 높은) 나의 펀드에 돈을 못 넣는 게 아쉽다(웃음). 길게 봤을 때 펀드 투자를 이길 재테크 수단은 찾기가 쉽지 않다고 본다.”

민수아 여성 최초로 국내 대형 자산운용사 주식운용 본부장 에 올랐다. 삼성자산운용에서 가치주와 중소형주에 특화된 펀드의 운용을 총괄 지휘하고 있다. 1994년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96~2002년 LIG손해보험 주식운용팀과 2002~2006년 인피니티 투자자문 펀드매니저를 거쳐 2006년 12월부터 삼성자산운용에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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