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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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호 27면

청말(淸末)의 계몽사상가 양계초(梁啓超)는 자신의 당호를 음빙실(飮氷室)이라 했다. 차디찬 얼음물을 마시듯(飮氷) 그 정신은 언제나 깨어 살아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다. 자신의 게으름을 경계하며 늘 스스로를 채찍질하려 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빙(氷)은 빙(<51B0>)을 줄인 글자다. 빙(<51B0>)은 얼음덩이를 그린 상형자 빙(<51AB>)에 물(水)이 더해진 것이다. 물이 더해진 까닭은 얼음이 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얼음은 물로 만들어지지만 물보다 더 차갑다(氷,水爲之而寒於水)’. 순자(荀子)의 말이다. ‘푸른색은 쪽(藍)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靑出於藍 靑於藍)’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얼음덩이(<51AB>)가 집(<5B80>)에 있으면 얼마나 추울까. 그래서 나온 글자가 ‘찰 한(寒)’이다.

‘비 우(雨)’는 구름 사이로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는 모양을 나타냈다. 날씨가 추우면 비(雨) 대신 눈(雪)이 내린다. ‘눈 설(雪)’에 대한 풀이는 다양하다. 눈 내리는 모습이 마치 깃털이 떨어지는 것과 같다고 생각돼 만들어진 글자라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눈발이 엉겨 빛나는 것을 나타낸다는 데서 ‘눈’의 뜻이 나왔다고도 한다.

눈(雪)에서 ‘비 우(雨)’ 밑의 아랫부분이 ‘비 추(<5E1A>)’라는 글자에서 연유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즉 추(<5E1A>)에서 아래의 자루 부분을 떼어낸 것이라는 이야기다. 추(<5E1A>)가 들어가는 대표적인 글자로 ‘지어미 부(婦)’가 있다. 남녀가 결혼을 하면 육아나 집안 청소 같은 가사(家事)는 아무래도 여자의 몫이다. 그래서 비(<5E1A>)를 든 여자(女)는 결혼한 여자를 가리킨다.

고대 중국에서 부(婦)는 일반 여성이 아니라 지체가 높은 여인을 일컬었다. 국사에 참여하고 군사까지 거느릴 수 있어 상당한 권력을 가졌다고 한다. 부(婦)가 단순히 집 청소를 한 게 아니라 제사를 모시는 제단을 청소하는 것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풀이다. 집에서 먼지를 쓰는 정도가 아니라 영혼을 깨끗이 하거나 악귀를 쓸어버리는 신성한 일을 했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쓸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맥락에서 설(雪)은 ‘비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걸 빗자루로 쓸어야 하는 것’이라는 데서 눈이라는 뜻이 나왔다고 한다. 눈발이 많이 날리는 요즘이다. 예나 지금이나 집 앞의 눈은 누군가 쓸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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