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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보이지 않는 창’과 ‘숨겨진 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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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마동훈
고려대 교수·미디어학부

세밑 ‘교수신문’이 선정한 사자성어 ‘엄이도종(掩耳盜鐘)’을 다시 생각해 본다. 종을 훔치려 한 도둑이 종이 너무 커서 깨서 가져가려다 소리가 너무 커 자기 귀를 막았다는 춘추시대 일화에서 유래했다. 자기가 한 일은 생각하지 않고 남의 비난이나 비판을 듣기 싫어 귀를 막지만 소용이 없다는 의미다. 지난 한 해 국가와 사회의 불통(不通)의 아픔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금년 한 해도 이 사자성어는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될 것 같다.

 결국 소통이 문제다. 자식에게 따뜻한 세끼 밥을 챙겨준다고 부모의 의무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자식의 성장통(成長痛)을 어루만져 주는 소통 없이 부모의 책임을 다했다고 보기 힘들다. 대학도, 기업도, 정부도, 그리고 정치인도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소통이 없기에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간의 반목(反目)이 더 심각하다. 서로 다른 세대 간의 불협화음도 더욱 심하다. 정치인과 국민의 불통(不通) 지수는 연일 상종가다.

 역사 속에서 소통의 부재 시대에 이득을 취하는 것은 늘 힘을 가진 기득권자들이었다. 점령군과 독재정권에는 굳이 소통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통이 일방적 무력 통치의 명분이었고, 한편 무기이기도 했다. 소통을 포기하고 힘을 행사해도 사회가 돌아갔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더 이상 불통의 통치가 먹히지 않는다. 소통이 정치의 중요한 인프라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소통의 ‘창(窓)’에 있다. 소통이란 서로가 바라보는 창을 통해 자신과 다른 사람의 관계를 설정하고 대화를 유지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상적인 소통의 창은 투명해야 하고 또한 순결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사회의 원칙과 신뢰의 인프라가 만들어진다.

 심리학자 조셉 루프트와 해리 잉검은 자신의 이름들을 따서 ‘조하리의 창(窓)(Johari’s Window)’을 제시한 바 있다. 조하리의 창에 의하면 이상적인 소통은 자신과 다른 사람이 아는 것과 일치되는 ‘이미 열린 창’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알지만 자신만 모르는 영역의 ‘보이지 않는 창’이 불통의 원인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예화가 여기에 해당된다. 자식들은 다 아는데 부모만 모르는 경우다. 국민들은 다 아는데 정치인만 모르는 경우다. 보이지 않는 불통의 창을 열어 소통의 창으로 전환하기 위한 유일한 방책은 진정성 담긴 ‘경청’이다.

 ‘슈스케’ 오디션 방식을 통해 젊은 세대에 다가가려는 노력도, 그리고 당의 이름을 바꿔보려는 시도도 모두 가상하다. 그런데 너무 즉흥적이고 너무 서두르기만 하는 것 같다. 정말 국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의심된다.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창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진정성 담긴 경청의 필수 요건은 국민에 대한 존경과 배려다. 부모가 있기에 자녀가 있다는 생각은 더 이상 아니다. 자녀가 있기에 부모가 있다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 국민이 있기에 정부가 있고 또한 정치가 있다는 사고로의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또 다른 불통의 창은 자신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은 모르는 ‘숨겨진 창’이다. 숨겨진 창을 열기 위해 흔히 대국민 홍보와 설득 ‘전략’을 먼저 떠올린다. 광고와 홍보 전략의 기술자가 창을 열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정성 담긴 ‘민얼굴’의 자기표현이다. 화려한 전략과 전술의 화장을 지우고 민얼굴의 직접 대면과 소통의 노력이 필요하다. 골프 치지 않고, 공공장소에서 금연하며, 막말하지 않겠다는 자기표현에는 너무 진한 화장 냄새가 감지된다. 트위터 역량지수와 페이스북 실적를 통한 공천 방식도 현시적 트렌드만 좇는 수준 낮은 마케팅 전략 이상이 아닌 것 같다.

 전략이 아닌 본질을 이야기해야 한다.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와 외교 통상 현안, 내수 경제와 복지, 교육의 미래에 대한 국민과의 숙의(熟議)을 위한 화두를 던지는 정공법이 필요하다. 다른 생각들도 포용할 수 있는 소통의 창을 열어야 한다. 늘 나만 옳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문재인 이사장의 최근 발언은 이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일방적인 자기주장만 난무하면 숨겨진 창은 더 커지고 사회의 불통지수는 더욱 높아진다.

 정치는 소통이다. 열려진 창을 통한 건전한 소통이다. 민얼굴로 대면하는 진정성 담긴 소통이다. 이를 통해 사회의 원칙과 신뢰라는 소중한 자산의 부가가치를 늘려가는 것이 바로 정치다. 보이지 않는 창과 숨겨진 창 뒤에 숨어 있는 정치는 정도(正道)가 아니다. 정도가 아닌 정치는 불과 몇 년 후 또 다른 당 이름의 작명과 또 다른 정치 쇄신의 위기를 불러올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올해 말에는 ‘존문행지(尊聞行知)’를 이야기했으면 한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듣고 소통하며 실천한 한 해라는 의미다.

마동훈 고려대 교수·미디어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