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엔고 … 수출 왕국 일본 31년 만에 무역적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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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해 일본의 무역수지가 31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고 일 재무성이 25일 발표했다. 무역수지는 수출액에서 수입액을 뺀 수치로, 지난해 무역적자 규모는 2조4927억 엔(약 36조원)에 달했다. 일본이 무역적자를 기록한 것은 제2차 오일쇼크로 유가가 급등해 수입액이 크게 늘었던 1980년(2조6000억 엔) 이후 처음이다.

 일 정부는 이날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것과 관련,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부품 공급난으로 자동차 등의 수출이 크게 줄어든 반면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의 가동 중단으로 화력발전소 연료인 액화천연가스(LNG)의 수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기록적인 엔고로 인한 수출 부진도 무역적자를 부추겼다. 지난해 일본의 수출은 2010년에 비해 2.7% 감소했다.

 다만 무역수지 외에 소득수지(일본이 해외로부터 벌어들인 이자·배당수입에서 일본이 해외에 지출한 이자·배당수입을 뺀 액수)까지 포함한 개념인 경상수지는 10조 엔 내외의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분석됐다. 해외로부터의 이자·배당 수입이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를 지탱하고 있는 셈이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이날 “31년 만의 무역적자로 그동안 거액의 무역흑자를 쌓아 온 ‘수출 입국(立國)’은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도 “일본의 수출대국 시대는 막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98년의 경우 14조 엔에 달하는 무역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날 도쿄 외환시장도 ‘31년 만의 무역적자’란 뉴스에 크게 움직였다. 그동안 엔고 흐름을 지탱하던 외국계 자금이 일제히 엔을 팔고 달러를 사면서 엔-달러 환율은 한때 달러당 78엔대 전반까지 가는 ‘엔저’가 진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 정부는 “지난해 무역적자는 예외적 상황이 겹쳐 일어났기 때문”이라며 일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후지무라 오사무(藤村修)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무역적자는) 동일본 대지진·엔고·태국 홍수 등의 여러 요인에 의한 것”이라며 “오히려 최근 수년간 무역수지는 축소되는 반면 소득수지가 확대돼 온 점으로 미뤄 우리나라(일본)의 무역구조 자체가 변화하고 있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무역적자 규모가 더욱 커져 경상수지 적자로 이어질 경우 일본 국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해외로부터 일본에 유입되는 자금이 줄어들면 방대한 규모의 일본 국채를 일본 국내 자금만으로는 사들이지 못하게 돼 재정 운영 및 일본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일본 내 모든 원전이 정지할 경우 무역적자 규모가 크게 늘어나 2017년에는 경상수지 적자로까지 전락할 것”이라며 “에너지를 포함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엔고 대책 등 더 폭넓은 관점에서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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