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스마트폰 못 끈 노신사의 실수 … 어른들께 사용법 잘 알려 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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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12년 1월 14일자 2면

설 연휴 동안 반가운 친척들과 오랜만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나요? 선생님이 어렸을 적만 해도 명절이 아니어도 이런저런 대소사로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일 일이 많았어요. 큰 집에서 새 살림살이를 들여놓거나 작은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는 등 핑계거리만 있으면 모여 와글와글 웃고 떠들며 이야기꽃을 피웠답니다.

요즘은 명절이 돼도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이기가 쉽지 않아요. 학생들은 학원 가랴, 밀린 숙제 하랴 공부에 바빠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고요.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아도 영상통화를 하거나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실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세상이라 직접 만나는 데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기도 해요. 스마트 기기가 발달하면서 우리 생활이 편리해지고 재미있어지는 건 사실인데 오히려 허전한 느낌이 드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아요.

이번 주에는 스마트 기기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를 들려주려고 해요. 기사 제목이 ‘아이폰 끌 줄 몰라 … 뉴욕 필 공연 중단’이기에, “또 누가 교양 없이 공연 중에 전화벨 소리를 울려댄 모양이군”하고 짐작했어요. 큰맘 먹고 영화관이나 공연장을 찾았다가 누군가의 휴대전화 벨소리나 통화소리 때문에 기분을 망친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거예요.

“이런 사람은 망신을 당해도 싸다”며 기사를 읽기 시작했는데, 제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답니다. 뉴욕 필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한참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순간, 앞자리에 앉은 노신사의 아이폰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댔다고 해요. 그것도 3~4분이나 울리는데 노신사는 끌 생각도 않고 꿋꿋이 앉아 있었다네요. 급기야 지휘자가 연주를 멈추고 불쾌감을 드러냈대요. 여기까지는 제 예상과 맞아떨어졌죠.

기사를 읽다가 저도 모르게 “아!”라는 탄식이 나온 건, 그 60대 노신사는 아이폰을 끄는 방법을 몰랐다는 부분에서였어요. 심지어 그 벨소리가 자기 휴대전화 소리라는 것도 한참 뒤에야 눈치챘다는 거예요.

아직 어린 여러분은 “어떻게 그 쉬운 걸 모를 수가 있어?”라고 반문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선생님도 지난해 처음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을 때 첫 느낌이 ‘난감함’이었거든요. 만지기만 하면 움직여대니 불안하기도 하고,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 내려받기도 휴대전화를 산 지 몇 주나 지나서 시도해 봤을 정도니까요. 60대 노신사라면 아이폰을 끄는 방법을 모르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여겨져서 그의 실수에 대해 결코 “무례하다”고 손가락질할 수 없더군요.

또 60대가 된 제 모습도 떠올려 봤어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정보통신 기기의 변화상을 보면, 60대가 된 저 역시 새로운 기기들을 제대로 사용하리란 확신이 들지 않더군요. 이처럼 문화가 발전해 가는 데 사람이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을 일컬어 ‘문화 지체’라고 부른답니다. 제 경우를 고백하자면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에 하루하루, 매 순간 문화 지체를 겪고 있는 기분이랍니다.

각종 모바일 기기에 익숙한 여러분과 저 같은 아날로그 세대의 간격은 앞으로도 점점 벌어지겠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바뀐 것처럼, 디지털을 대체하는 새로운 기술이 개발된다면 여러분도 지금의 저와 같은 어리둥절한 문화 지체를 경험하게 될지 모르겠어요.

노신사를 책망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슬며시 저 자신을 반성해 보기도 했답니다. 컴퓨터 작동법을 알려달라는 부모님께, 문자메시지 보내는 법을 물어보는 주변 어른들께 지금껏 상냥하게 대해드리지 못했거든요. “이걸 왜 모르실까?” 하며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여러분에게도 당부하고 싶네요. 어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질러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달라고요. 서로가 실수를 덮어주고 감싸준다면 빠르게 발전하는 사회 속에서 문화 자체를 겪으며 살아가는 일이 버겁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심미향 숭의여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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