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프랑스와 국교 단절 불사” … 과거사 갈등 고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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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터키의 옛 왕국인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인 1915년 자행한 ‘아르메니아인 대량학살(genocide) 사건’을 둘러싸고 프랑스와 터키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프랑스 상원은 23일(현지시간) 아르메니아인 대량학살을 공개적으로 부정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찬성 127 대 반대 86로 가결했다. 지난달 하원을 통과한 이 법안은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서명만 거치면 공식 효력을 갖는다. 대량학살을 부정하고 있는 터키는 “프랑스 상원의 의결은 터키에 대한 중대한 모독”이라며 국교 단절도 불사할 태세다.

 프랑스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발생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부정하는 행위 역시 법률로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아르메니아인 대량학살 사실을 공공연히 부정할 경우에도 똑같이 최고 1년의 징역과 4만5000유로(약 550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 프랑스는 2001년 이 사건을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저지른 학살이라고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이번에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공개적으로 부정하는 걸 금지한 것이다.

 아르메니아 정부는 “반인도주의 범죄 재발을 막는 역사적인 조치”라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사둘라 에르긴 터키 법무장관은 프랑스 상원에서 법안이 통과된 직후 CNN과의 인터뷰에서 “프랑스 상원의 의결은 매우 부당할 뿐 아니라 터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심도 보이지 못한 행동”이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사르코지 대통령이 4월 대선에서 50만 명에 달하는 아르메니아계 프랑스인의 지지를 받기 위해 이번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프랑스와 터키는 중동정세 등 각종 외교 문제에서 연대를 강화해 온 우방이다. 2006년에도 비슷한 법안이 프랑스 하원에서 통과됐지만 터키 측이 군사협력 중단을 선언하는 등 압박을 가하는 바람에 상원에서 부결됐다.

◆아르메니아인 대량학살 사건=1915년 터키 동부 지역에서 다수의 아르메니아인이 살해된 사건. 아르메니아 측은 옛 오스만튀르크 제국에 의한 ‘대량학살’이며, 당시 기독교도인 아르메니아인 150여만 명이 숨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터키 측은 아르메니아인 무장세력이 내전과 기근 등으로 숨졌다고 반박한다. 터키 측이 조사한 사망자 수는 약 30만~50만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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