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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때 망할 뻔한 회사, 세계 10위권 만든 '15년 CEO'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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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기상천외한 ‘낙하산’ 사장이다. 행정고시를 패스해 재경부 대변인과 공보관 등 일명 ‘꽃길’을 걷다, 어느 날 다 접고 망해가는 회사로 갔다. 1998년 7월 15일자 신문들은 인사란에 ‘대한재보험사장 박종원씨’를 실으며, 이 회사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280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해 파산 위험이 크다고 덧붙였다. 대한재보험은 78년 민영화됐지만 경영은 방만했다.

사장이 ‘내년 성장률이 얼마냐’고 물으면 임원이 ‘0%요’라고 했다. 그로부터 14년, 회사는 아시아 1위, 세계 11위가 됐다. 이름은 2002년부터 영어 식으로 ‘코리안리(Korean Re)’다. 국내외 경영대학원과 공·사기업, 심지어 국가정보원까지 성공사례를 연구한다.

변신은 박종원(68) 사장에게서 시작돼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에 나라 안팎으로 경제가 많이 어려웠지만 1300억원(순이익) 흑자 났어요. 올해는 임진년 아닙니까. 용처럼 하늘 높이 날아야죠!” 서울 종로구 수송동 본사 건물이 쩌렁쩌렁 울리는 듯했다. 

글=이소아 기자  

●우선 재보험이란 게 뭔가.

 “개인이나 기업이 만약을 대비하려고 보험을 들지 않나. 그 계약 일부를 다시 인수하는 게 재보험회사다. 보험사를 위한 보험이라고 보면 된다. 보험사들의 보상책임을 분산해 주는 거다.”

●당시 구조조정을 참 세게 했다.

 “최고경영자(CEO)는 그 회사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다음 자리, 연임을 생각하고 하면 안 된다. 당장 잘리더라도 회사를 위해 하겠다는 마음이어야 한다. 그런 각오로 결단을 내린 거다.”

●어떤 기준으로 했나.

 “근무평가 60%, 다면평가 40%가 원칙이었다. 철저히 투명하게 점수를 매겨 임원, 부장, 차장과 과장은 절반이 나갔다. 대리는 17%가 나갔다. 그 안에 노조위원장도 있었고, 소위 실세라는 사람도 있었고, 대통령특보 동창이라는 사람도 있었고….”

●반발이 심했을 것 같다.

 “부장 하나를 내보내려니까 오히려 위에서 임원 시키라고 하더라. ‘빽’이 있다고. 그래도 가차없이 내보냈다. 그게 내 철학이고 소신이니까. 부서 이기주의, 전문성 성역을 깨려고 순환근무제도 도입했다.”

●고위 공무원에 대한 꿈은 없었나.

 “하하. 당연히 있었다. 한때는 청운의 꿈, 장관 꿈도 가졌다. 실제 27년을 잘했었고…. 그런데 어느 날 딱 이건 아니다, 싶더라. 위만 쳐다보며 살아온 게 나하고 안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일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민간 조직에 가서 끼를 발휘해 보려고 손 들고 나왔다.”

●주위에서 안 붙잡았나.

 “당시 (재경부) 장관이 사직서 수리를 한 달 동안 보류했다. 대변인이 얼마나 좋은 코스인데 가지 말라고, 이해가 안 된다고 하더라. 가족들도 다 반대했다. 그래도 사람은 사는 길이 다 따로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좋아 보여도 남의 인생을 살 수는 없는 거다.”

●당시 동료들이 지금은 뭐라 하나.

 “지금은 ‘잘 나갔다. 그때 어찌 그런 생각을 했어?’라고 하더라. 행시 후배들도 ‘박 선배처럼만 되면 저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하고. 물론 공직도 장점이 있다. 공공성을 띠니까 보람도 크다. 하지만 이제는 공직에 있더라도 민간 조직 경험을 해봐야 한다.”

 한국인의 퇴직연령은 53세. 하지만 박 사장은 2010년 주주총회에서 ‘5연임 신화’를 세우면서 2013년까지 사장직을 맡게 됐다. ‘월급쟁이 사장’이 일흔 가까운 나이까지 자리를 유지하는 건 유례가 드물다.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도 하다. 실제 ‘15년 장기집권’은 금융권은 물론 최근 10년간 한국 500대 기업을 통틀어 최장수다.

●모르는 사람은 ‘창업자’인 줄 알겠다.

 “정말 회사를 새로 세운다는 맘으로 했다. 계속 재신임을 받은 건 100% 경영성과가 좋기 때문일 거다. 빚더미에 앉아있던 회사가 지금은 아시아 1등이 됐으니까. 10년간 연평균 13% 이상씩 성장했고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할 거다.”

●태국 대홍수로 회사에 700억원 손실이 났다던데.

 “추산 손실액이다. 상장기업이니까 뭐든 신속하고 투명하게 공시해야 한다. 걱정은 없다.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게(해외수재보험료) 1조원이라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는다. 일본 보험사들이 피해가 크다. 태국 쪽이랑 계약을 많이 맺어서….”

●자연재해가 많아지는데 영향이 없겠나.

 “이런 위험을 대비해 5~6년 전부터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했다. 어디는 위험하고 어디는 불량한지 해외 영업 가이드라인을 다시 만들었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나. 위험 관리를 더 철저히 하되 해외시장을 계속 넓혀가야 한다. 현재 해외매출 비중이 20%지만 2020년엔 5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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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자신 있는 건가.

 “일단 상황은 유리하다. 대형 재해가 많아서 보험료율이 크게 오를 거고, 해외 경쟁사들의 담보력이 줄어서 우리가 성장 면에서 유리할거다. 야심작들도 준비 중이다. 미국에서는 건강보험 중심으로 박차를 가할 거고, 국내에서도 새로운 종신 암보험을 선보일 생각이다.”

 10년 넘게 ‘해외’를 부르짖은 덕에 박종원이란 이름 석자는 나라 밖에서 더 유명하다. 재보험업계에서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영국의 리인슈어런스(Reinsurance) 매거진은 ‘2010 재보험 파워리스트’에 박 사장을 21위로 올렸다. 순위 안에 포함된 사건이나 기관을 제외하고 인물로만 따지면 15위나 다름없다. 회사의 업계 순위는 보유보험료 기준(2011년 예상액 약 3조5300억원) 아시아 1위, 세계 10위를 코앞에 두고 있다.

●해외에서 잘하려면 직원교육도 중요하겠다.

 “바로 그거다. 해외영업은 결국 정보싸움이다. 언더라이팅(보험계약의 최종심사과정) 기법이 아니라 해외 인적네트워크와 정보가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 직원들은 4~5년 일하면 무조건 다 해외경험을 하게 한다. 뉴욕·도쿄·베이징·홍콩·런던·두바이 등 세계 각지 사무실에 주재원도 보내고, 해외 연수 프로그램도 받게 한다.”

 박 사장은 “영재가 인재는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유난히 사람 욕심이 많아, 신입사원 20명을 뽑는 데 몰린 1000명의 입사지원서를 직접 다 본다. 귀를 의심하며 ‘정말입니까?’ 재차 확인하니 “당연하지!”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래도 명문대 출신이 많이 뽑히지 않나.

 “학점과 각종 시험성적은 봐도 학교는 안 본다. 한번 좋은 대학 가고, 한번 고시 붙었다고 평생을 보장받는다? 이건 아니지. 대한민국은 인재를 중시한다면서 아직도 사실은 간판공화국, 스펙 공화국이다.”

●인재를 어떻게 가리나.

 “똑똑한 사람은 많은데 데려다 쓸 사람은 없다. 지식만 있지 멘털(정신)이 약해서 그렇다. 내 철학, 내 정신이 있어야 가진 지식을 어떻게 쓸지 결정할 수 있다. 입사 지원자는 무조건 자필로 원서를 써서 방문 접수해야 한다. 성의와 진정성이 중요하니까. 그 서류를 1차로 같은 대학 출신의 회사 선배들이 평가하게 한다. 자기 후배들이라 더 칼같이 공명정대하게 가려낸다.”

●야외면접이 유명하던데.

 “아침에 모여서 청계산 등 어디 산을 오른다. 지원자 4~5명당 직원 2명을 붙여서 평가를 한다. 산에서 내려오면 축구시합, 오래 달리기, 저녁회식을 한다. 그때도 별의별 걸 다 물어본다. 하루 종일 딱 붙어서 평가하는 거다.”

 2004년부터는 기존 직원들도 ‘백두대간 종주’에 나선다. 매년 지리산·덕유산·속리산·소백산·태백산·설악산 등을 차례로 오르는데 2박3일 동안 매일 6~8시간씩 행군해야 끝난다. 물론 선봉장은 박 사장이다.

●왜 그렇게 하나.

 “실력도 실력이지만 정신과 육체가 강해야 한다. 지덕체(知德體)가 아니라 체덕지(體德知)다. 기업의 생존력도 결국은 ‘야성(野性)’이다. 섬섬옥수로 고생이 없으면 자기만 손해다. 월남전 터졌을 때 해병대에 지원해 많은 것을 경험했다. 이유 없이 두들겨 맞고, 영하 20도에 이불도 없이 동료끼리 끌어안고 잤다. 구닥다리 옛날 얘기 같나? 난 그 뒤로 세상이 쉬워졌다. 고시도 해병대 다녀와서 한 거다.”

●아래에서 잘 이해하고 따라주나.

 “리더십은 곧 소통이다. 직원들과 밥 한번 먹었다고 소통한 게 아니다. 정작 직원들은 밥도 안 넘어간다. 대리랑 얘기하면 대리로 내려가야 한다. 길에 버려진 개가 왜 사람보고 사납게 짖는 줄 아나. 상처를 받아서, 그리고 사람 눈이 자기보다 위에 있어서 그렇다. 개 눈높이만큼 앉아서 눈을 마주치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다려라. 그 다음에 쓰다듬어주면 조용해진다.”

●눈높이를 맞춘다는 의미는.

 “아랫사람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인사가 리더십의 핵심이다. 직원이 ‘꼭 이 일을 해 보고 싶습니다’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길을 열어주는 게 소통이다. 상사들은 자기 또래와 그 위만 쳐다본다. 아래서 누가 남몰래 열심히 하는지 보고 좋은 보직을 줘야 한다. 난 누가 아부하면 ‘너 생긴 대로 하라’고 한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진실하고 착실한 사람이 인정받아야 조직이 일어난다.”

 그의 소통은 회사 직원 그 아래로 내려간다. 시간을 쪼개 한 학기 내내 모교인 연세대 후배들의 ‘멘토’를 자청한 것. 박 사장은 연세대 경영학과 정규과목인 ‘연경리더스포럼’에서 학생 5명을 맡아 연구활동을 지도하고, 강연을 하고, 보고서까지 직접 감수했다. 한 학생은 “사장님이 저녁을 사주시면서 ‘젊었을 때 맘껏 달려라’고 한 말이 가슴에 남는다”며 “교장선생님 같은 분”이라고 표현했다.

●바쁜 와중에 멘토까지 하는 이유는.

 “멘토는 나눔이다. 재물을 나누듯이 그동안 쌓인 지식과 경험을 후배들에게 나누는 거다. 잘나서가 아니라 경험이 많아서다. 산 지식은 책이 아니라 멘토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다.”

●그 모든 걸 하려면 체력이 중요할 것 같다.

 “아침마다 운동한다. 소식(小食)하며 몸무게를 조절하고. 술도 한두 잔 정도만 한다. 재경부 대변인, 공보관 시절에 폭탄주를 하루에 10잔도 넘게 많이도 마셨다. 살고 보니까 옛날에 술 잘 먹는다는 사람들, 이제는 (건강이 나빠져서) 하나도 못 마시더라.”

●그때 술만 마시면 기자들 귀를 잡아당겼다는 얘기가 전해지는데.

 “하하하. 내 말 좀 똑똑히 들으라고 그랬지! 언론이 정확하게 들어야 국민에게도 정확하게 알려지니까.”

What Matters Most?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가정이다. 특별한 인연이니까. 모든 행복은 가정에서 나온다. 가화만사성, 이 말이 정말 진리다. 연말에도 직원들과 부부 동반해 뮤지컬을 봤다. 부장 부부들과는 ‘에비타’, 임원 부부들과는 ‘영웅’을 봤다. 부인들도 회사 돌아가는 걸 알아야 한다. 가정과 회사는 불가분의 관계다. 일 잘하려면 가정에도 충실해야 한다는 얘기다.”

실력으로 S&P 몰아붙인 당당함
“당신네가 A등급 줬던 회사들 9·11로 망했잖소, A는 개뿔 … ”

“아, 그러니까 일단 A를 받아오시라고요.”

 툭 하면 문전박대를 받기 일쑤였다. 박종원 사장은 일찌감치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지만 신용등급이 문제였다. 재보험사가 해외에서 계약을 따려면 높은 신용등급이 필수인데,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000년대 초반까지 코리안리에 아예 등급을 주지 않았다. 이후 기업 실적과 재무상태가 빠르게 좋아지면서 등급이 오르긴 했지만 BBB+가 한계였다. “좋은 물건이나 거래처를 확보하려면 A등급을 받아야 하는데 담보력이 약하다며 안 올려주더라고요. 성장성, 안정성, 수익성, 경영철학 다 좋은데 담보력 때문에 안 된다니까 정말 안타까운 거죠.”

 바로 그 무렵 미국에서 9·11테러가 터졌다. 박 사장은 ‘바로 이거다!’라며 즉시 누적관리, 건당위험관리 등 위기관리(리스크 매니지먼트)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그리고 2006년 9월 관련 서류를 바리바리 싸 들고 미국 S&P로 쳐들어갔다(?). 그는 S&P 임원에게 “9·11테러로 당신들이 A등급을 준 보험사들이 다 무너졌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 신용등급이 곧 대외지급능력인데, 그렇다면 어디가 더 믿을 만한 곳이냐”고 따져 물었다. “이래도 (A등급) 못 받고, 저래도 못 받을 바엔 정면으로 부닥쳐라도 보자”며 배수진을 친 것이다. 무안을 당한 임원은 말 없이 얼굴만 붉으락푸르락했다. 하지만 그동안 발전시켜온 위기관리 시스템을 보여주며 차근차근 설명하자 고개를 끄덕거리기 시작했다. 3개월 뒤 코리안리는 S&P로부터 신용등급 A-를 받아냈고 그때부터 새로운 해외시장이 착착 열리기 시작했다. 1998년 망했던 회사가 공적자금 한 푼 들이지 않고 8년 만에 최고 수준의 신용등급을 받아낸 셈이다. 박 사장은 그때를 생각하며 아직도 감격스러워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신용평가사들의 평가를 믿을 수 없다는 비판도 있죠. 그래도 됐다고 하세요. A 받는 기분이 어떤 건지 안 받아본 사람은 모른다니까요!”

j 칵테일 >> “수건이 걸레로 추락하면 만회 어렵죠”

베테랑 경영자는 자신만의 독특한 ‘경영지론’이 있게 마련이다.

 한때 ‘야성경영(野性經營)’이란 말로 주목을 받았던 박종원 사장은 요즘엔 ‘가시론’과 ‘걸레론’을 주장한다.

●가시론이 뭔가.

 “사람은 고통과 시련, 병마를 딛고 일어나면 더 강해진다. 성경에 ‘가시도 축복이다’란 말이 나온다. 사도 바울은 피부병, 안질 등 큰 고통이 있었지만 ‘이게 아니면 교만해졌을 텐데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 감사할 줄 모르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본인의 가시는 뭔가.

 “입시에도, 고시도 떨어져 봤지만, 구조조정이 가장 큰 가시다. (내보낸) 직원들에겐 다 식구가 딸려있었다. 그걸 왜 모르겠나. 너무 고통스러웠다.”

●원칙 없이는 못 할 일이었겠다.

 “원칙을 지키는 건 의외로 쉽다. 아무리 다급하고 바쁜 사람도 걸레로 얼굴 닦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어쩌다 한번 수건으로 방바닥을 닦았을 때다. 수건이 걸레로 추락하면 회복하기 힘들다. 그게 내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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