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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글이 써(?) 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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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거센 바람이 대문 앞 나뭇가지를 세차게 흔들었다.” “거센 바람에 대문 앞 나뭇가지가 세차게 흔들렸다.” ‘흔들다’는 능동형이고, ‘흔들리다’는 피동형이다. 두 문장 중에서 어느 것이 더 간결하고 힘이 있는가.

 글쓰기 관련 강좌나 책에서 우리 문장을 쓸 때 웬만하면 피동형을 쓰지 말라는 주장을 흔히 접하게 된다. 능동형 동사를 사용하면 글이 늘어지지 않아 간결해지고 힘찬 문장이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주장이 우리글에서 피동형 동사를 써서는 안 된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피동형이 꼭 필요할 때는 사용해야 한다.

 다음과 같은 예문을 보자. “교회 옆 ‘나누리 쉼터’는 밤늦은 시간에도 항상 불이 켜 있다.” “스님의 뒷모습은 저 멀리 물결처럼 펼쳐 있는 산의 능선처럼 아름다웠다.” “나는 (ㅋ이 떨어져 나간) ‘복싱’이라고 써 있는 낡은 킥복싱 체육관을 다니게 되었다.” “외딴 오두막에는 양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철조망도 둘러쳐 있었어.”

 ‘켜다’ ‘펼치다’ ‘쓰다’ ‘둘러치다’는 타동사다. ‘불을 켜다’ ‘책을 펼치다’ ‘글을 쓰다’ ‘거적을 둘러치다’처럼 쓴다. 이들을 피동형으로 바꾸면 ‘불이 켜지다’ ‘책이 펼쳐지다’ ‘글이 쓰이다’ ‘거적이 둘러쳐지다’가 된다. 첫째 예문의 ‘불이 켜 있다’는 잘못된 문장이다. ‘불이 켜져 있다’로 해야 옳다. 둘째 예문의 ‘물결처럼 펼쳐 있는’은 ‘…펼쳐져 있는’으로, 셋째 예문의 ‘복싱이라고 써 있는’도 ‘…쓰여[씌어, 적혀] 있는’으로 적어야 맞다. 넷째 예문의 ‘철조망도 둘러쳐 있었어’는 ‘철조망도 둘러쳐져 있었어’로 해야 바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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