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금융범죄, ‘걸려도 남는 장사’ 돼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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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지난해 11월 미국 법원은 헤지펀드 업계의 한 거물에게 징역 11년을 선고했다.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5000만 달러 이상의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이유에서였다. 판사는 벌금 1000만 달러와 부당이익금 5000만 달러도 몰수하라고 명령하면서 “유사범죄에 대한 강력한 억지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금융범죄를 다룬 한국 법원의 판결은 180도 달랐다. 똑같이 미공개정보를 활용한 주가 조작으로 무려 165억원의 부당이득을 올린 혐의로 기소된 어느 재벌 3세에게 내린 선고는 고작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이었다. 선고 직후 바로 풀려나왔다. 주가 조작이나 내부자 거래 등의 금융범죄가 미국에선 “한 번 걸리면 감옥에서 죽음을 맞는 것”으로, 한국에선 “걸려도 남는 장사”로 인식되고 있는 이유다.

 금융범죄가 한국에서 갈수록 늘어나는 건 이 때문이다. 예컨대 대주주·경영진이 개입한 주식 불공정거래 행위는 2008년 7건에서 지난해 34건으로 늘어났다. 올해 선거를 앞두고 작전세력 개입이 의심되는 정치테마주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이 조사반을 가동한다고 발표해도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할 정도가 됐다. 적발이 제대로 안 되는 데다 설령 적발돼도 처벌이 솜방망이다.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를 지낸 김동원 연세대 경영대학 객원교수도 보고서에서 같은 얘기를 했다. 그에 따르면 당국에 적발되는 금융범죄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범죄의 10%도 채 안 된다. 게다가 적발돼도 실제로 기소까지 가는 건 5% 남짓이다. 기소돼도 징역형을 선고받을 확률은 11%고, 징역형을 선고받아도 집행유예로 풀려나올 확률이 절반을 넘는다. 10명 중 9명은 범죄를 저질러도 무사하고, 설령 적발되더라도 징역을 살 확률은 엄청 낮다는 의미다.

 금융범죄는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 범죄다. 일반 국민에게 미치는 해악이 엄청나다. 미국이 금융위기 이후 21개 부처가 참여하는 특별조사기구를 만들어 엄격하게 대처하고 있는 이유다. 우리도 적발과 처벌, 양쪽 모두를 강화해야 한다. “걸려도 남는 장사”라는 인식은 없애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