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00년 동안 부르고 또 부르고‘이 풍진 세상’ 그 절절한 울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52호 17면

한대수의 1975년 앨범(사진 위)과 고복수 등 원로가수들의 앨범. 사진 가요114 제공

1월이면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다사다난한 한 해’와 ‘희망찬 새해’ 같은 말이 되풀이된다. 희망, 희망이라… 우리는 이 새해에 무슨 희망을 꿈꾸어야 할까.
19세기 말까지 민요나 시조를 부르며 살았던 이 땅에 개항 이후 서양과 일본으로부터 낯선 음악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초기에는 찬송가와 계몽적인 노래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1910년대에 이르러 사적인 이야기나 일상의 감정 등을 다룬 노래가 나타난다. 이것을 당시에는 ‘유행창가’라고 불렀다. 이 유행창가가 대중매체나 대중적 공연을 통해 상업화의 길을 걷게 될 때 드디어 ‘대중가요’라고 지칭할 수 있게 되는데, ‘희망가’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이 노래는 상업적 음반에 수록된(현재까지 발견된 것으로는) 최초의 유행가다.

이영미의 7080 노래방 <40> 희망가

“1.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 같도다.
2. 담소화락(談笑和樂)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범하여 / 전정(前程) 사업을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 / 반공 중에 둥근 달 아래서 갈 길 모르는 저 청년아 / 부패 사업을 개량토록 인도하소서.”(박채선·이류색의 ‘이 풍진 세월’ 1·2절, 1920, 작사 미상, 외국 곡)

이 노래의 악곡은 미국의 찬송가 ‘When We Arrive at Home’이다. 곡은 빌려왔을지언정 가사는 확실히 우리나라 사람의 창작물이니, 우리나라 대중가요사의 첫 자리에 놓이는 것은 마땅하다.

지금은 이 노래를 다들 ‘희망가’라 부르고 있지만 1920년대 악보집과 음반에는 가사 첫 부분을 따 ‘이 풍진 세상’ ‘이 풍진 세상을’ ‘이 풍진 세월’ 등으로 제목을 붙였다. 우리가 많이 기억하는 1절에서는 ‘청년경계’니 ‘탕자자탄’이니 하는 내용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무려 4절에 이르는 노래 가사를 살펴보면 분명 청년을 향한 계몽가가 분명하다. 2절만 해도 청년들이 모여 웃고 떠들고 주색잡기에나 골몰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갈 사업을 하라고 준엄하게 가르치고 있다. 3, 4절에서는 할 일은 태산 같고 가는 세월은 화살 같으니 이제부터라도 문명의 학문을 열심히 배우라고 경계한다.

하지만 노래의 주인은 창작자도 가수도 아닌 노래를 부르는 대중이다. 사람들은 100년이 다 되어가도록 이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공부 열심히 하라는 계몽적인 노래로 받아들였다면 이토록 오래 사랑받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대중에게 호소력을 발휘한 것은 바로 첫 구절,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였다.

‘풍진(風塵) 세상’. 이 얼마나 가슴에 와닿는 말인가. 20세기 이후 우리나라는 한시도 ‘풍진 세상’이 아닌 적이 없었다. 식민지, 분단, 전쟁, 게다가 정신 없이 돌아가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정치경제적 변화까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다이내믹 코리아’이니 어찌 ‘풍진’, 즉 바람과 먼지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이런 풍진 세상에서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묻는 첫 구절은 늘 절실한 질문이었다.

뒤를 잇는 구절은 더 기막히다.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다. 사실 우리는 잘 먹고 잘살자고 악다구니를 쓰고 풍진 세상 한복판에서 헉헉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노래는 “돈 많이 벌고 떵떵거리는 지위에 오르면 희망이 족하겠니?”라고 진지하게 되묻는다. 조용한 달밤에 마음을 비우고 생각해 보면 그런 것은 정말 ‘일장춘몽’ 같은 것인데 말이다. 이 진지한 물음과 문제 제기가 대중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으리라.

이 노래는 100년 가까이 잊히지 않고 살아남아 리메이크되며 불렸다. 이름으로 미루어 보아 기생임이 분명한 박채선과 이류색의 20년대 노래는 완전히 경기민요의 가창법으로 불러 지금 들으면 퓨전 국악 같다. 60년대 이후 취입된 신카나리아·고복수 등 원로 가수들의 노래는 그야말로 ‘흘러간 옛 노래’를 정리하는 느낌으로 정통적이고 얌전하다.

70년대 이후 목소리가 젊어지는 포크와 록 가수들에 이르면 달라진다. 80년대 초 녹음된 송창식 버전과 이연실 버전은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이들이 세상의 헛된 열정을 잠시 식히며 부르는 목소리를 낸다. 그에 비해 한대수의 75년 버전과 전인권 목소리의 들국화 버전은 세상의 부귀영화를 아예 접어치워버린 아웃사이더의 느낌을 주어 매력적이다. 여기에 재즈 가수 말로의 98년 버전은 아예 “이 풍진…희망이 족할까”의 첫 구절만 부르고 끝내버렸다. 이 질문이야말로 노래의 전부라고 선언해 버린 것이다.
여기에 테너 색소폰 연주자 이정식의 연주, 이생강의 대금 연주까지 듣고 있노라면, 100년 동안 험악한 풍진 세상을 살아온 한국인들이 수없이 던진 수많은 색깔의 질문을 생각하게 된다. 용이 꿈틀거려 어느 때보다도 풍진이 심할 올 한 해, 진정 나의 ‘희망’은 무엇일까.


이영미씨는 대중예술평론가다. 대중가요 관련 저서로『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광화문 연가』등이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