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죽음으로 고발한 종교·재계의 추악한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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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반인간선언
주원규 지음
자음과모음
308쪽, 1만2700원

‘인간이기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한다.’ 이 소설의 저자는 언뜻 이해하기 힘든 명제를 던진다. 그러면서 되묻는다. “우리는 지금 인간으로 살고 있는가.” 작가를 대신해 이런 질문을 던지는 주체는 다름 아닌 일곱 조각으로 잘려나간 등장 인물의 신체다.

 이야기는 제법 끔찍하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잘려진 손이 발견된다. 재계 1순위 CS그룹의 연구원인 상훈의 손이다. 비슷한 시기에 CS그룹과 관련된 인물들이 차례로 살해되면서 형사의 추적이 시작된다. 잘려나간 상훈의 신체가 발견될 때마다 정치·경제·종교계의 추악한 진실이 조금씩 실체를 드러낸다.

 작가 주원규는 『망루』 『열외인종잔혹사』 등에서 한국사회를 정면으로 비판해왔다. 이번에도 칼날은 매섭다. 특히 그가 주목한 것은 종교화된 기업과 기업화된 종교다. 영향력 있는 천주교 사제인 정영문이 ‘종교가 기업윤리의 근간이 돼야 하며 반기업적 인간은 짐승과 다름 없다’고 하는 대목에선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아닌 게 아니라, 소설에는 소름이 돋는 장면이 많다. 상훈은 자신의 신체를 일곱 조각으로 절단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정영문과 CS그룹의 음모에 더 이상 동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이에게 자신의 손·발·귀·입·눈·머리·심장을 도려내 세상에 공개하도록 시킨다. 자신의 육체를 찢는 것으로 반인간적 사회에 경고를 보낸 셈이다.

 성서에서 숫자 7은 완전한 숫자를 의미한다. 상훈은 잘려진 육체가 발견돼 비로소 완전한 하나를 이룰 때, 비인간적인 사회의 정신을 환기시킬 수 있다고 믿지 않았을까.

 신체가 절단되는 설정은 다분히 엽기적이다. 그러나 살인과 자해, 신체절단 등은 단순한 흥미거리가 아니다. 소설의 무게는 인간이기를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현실사회의 비극에 실려있다.

 작가는 현직 목사다. 정치·경제·종교 권력의 음모라는 무거운 주제를 흡인력 있는 문체로 깔끔하게 풀어나간다. 숨막히는 이야기에 빠져들고 나면 ‘우리가 지금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라는 저자의 질문이 한동안 머릿속을 휘저을 것이다.

손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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