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북한, 대남 비난에 매달릴 때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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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매년 1월 1일자 노동신문 등 북한의 3개 신문에 공동으로 실리는 ‘공동사설’은 북한의 한 해 국가 운영 방향을 알리는 문건이다. 올해 사설에서 북한은 대남 비난을 강화하고 5년 만에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이례적 입장을 보였다. 지난 몇 년 사이 남북대화를 강조해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 연말 국방위원회 명의로 강하게 비난한 연장선이다. 북한의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도 같은 입장을 밝혔다. 김정일 조문을 일부 제한한 정부 조치를 겨냥했다. 김정일 장례식이 끝나고 북한이 취한 첫 조치가 강력한 대남 비난인 것이다. 정부가 조의를 표명하고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 조문을 허용하면서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반응이다. 이로써 올해도 남북관계는 경색국면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의 첫 반응은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과 논쟁을 벌일 생각이 없다. 정부 입장도 익명의 비공식 논평으로 밝혔으며 내용도 “북한이 하루빨리 안정을 회복하고 남북관계에서도 건설적 태도를 취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흔들기’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례적이지만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처한 상황과 의도를 꼼꼼히 살핀 끝에 내놓은 입장이다.

 북한이 연일 대남 비난을 일삼는 것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제시된다. 일부에선 “나쁜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북한 문제 전문가들은 대체로 ‘북한이 처한 상황의 반영’이라는 분석에 동의한다. 조동호 이대 교수는 “김정일 사망으로 대내 문제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하는 시점인데 남한과 미국이 긴장을 조성하는 정책으로 나오면 골치가 아프기에 사전에 경고하려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동국대 고유환 교수도 “대남 강경 노선을 견지하면서 내부 결속에 활용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만의 독특한 역설적 화법이 구사된 것’이라는 의견까지 내놓는다. 실제로 북한은 과거에도 내부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대남 강경 자세를 보이며 내부 결속을 다지는 데 활용한 경우가 많다. 17년 전 김일성 사망 당시가 대표적 사례다. 그때도 북한은 정부의 ‘조문 불허’ 입장을 시비하며 상당 기간 대남 강경 자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당시 북한은 몇 년 동안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라는 건국 이래 최악의 체제 위기에 빠져 있었다.

 북한의 격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북한의 안정 회복을 바란다’고 밝힌 정부 입장은 지난 20여 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통일부는 신년 공동사설에 ‘대화’나 ‘협력’이라는 단어가 빠지고 대남 비난의 톤을 높였다고 해서 북한의 입장이 큰 틀에서 달라진 것은 아니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전술적인 행태’일 뿐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대남 공격에도 불구하고 새해 남북관계 전망을 어둡게만 볼 필요가 없음을 시사한다. 정부의 신중한 접근은 평가할 만하다. 전환기에 처한 북한이 하루빨리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높이는 방향으로 입장을 바꾸도록 기다리겠다는 의사표시다.

 그렇더라도 북한의 모습이 ‘꼴 사나운 것’만은 분명하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욕설부터 하고 나선 것이 그렇다. 어려운 입장이라면 도와달라고 하든지, 그게 싫다면 가만히 있으면 될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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