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들, 모방 자살 방지 프로그램 외면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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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011년 6월 서울 강북의 한 고교 교사가 서울시 소아청소년정신보건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학생 한 명이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는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긴급 요청이었다. 상담자는 119 신고 등 관련 기관에 협조를 구하게 한 뒤 “다른 학생들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희망의 토닥임’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일반 학생에 대한 그룹 또는 개별 상담을 진행해 이들이 심적인 안정을 취하게 하는 동시에 모방 자살을 하지 않게 하려는 조치다.

 학교 측은 난색을 보였다. 학교 관계자는 “외부인인 상담사가 학교에 오게 되면 나쁜 소식이 외부로 알려지게 되고, 수업 진행에 차질이 생길까봐 어렵다”고 말했다.

 이 센터는 2005년 설립돼 청소년 정신건강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전문 상담기관이다. 이 센터가 학교에 도움을 주기 위해 5월에 도입한 ‘희망의 토닥임’ 프로그램이 정작 학교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자살 사건이 발생한 학교 9곳이 이 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강남의 고교 한 곳, 강북의 중학교 한 곳 등 두 곳만 상담 등 사후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뿐이다. 7곳은 전화로 상담만 받고 프로그램 진행을 거절했다. 2011년 서울 시내 학교에서 목숨을 끊은 중·고생은 18명이다.

 윤명주 보건센터 팀장은 “대부분 상담 과정에서 학교의 문제를 공개해야 하는 것에 민감하다”고 말했다. 또 프로그램 진행 중수업 일정이 조정되거나 교사 업무가 늘어난다는 것도 도입을 꺼리게 하는 요인이다.

 사건 발생 후 교사들이 학생에게 ‘함구령’을 내리는 일도 있다. 윤 팀장은 “아이들이 받았을 정신적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노력해야 할 교사들이 학교 명예 등 외적인 일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송자 서울시 보건정책과 지역보건팀장은 “학교 측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책 프로그램을 도입하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전영선 기자

◆희망의 토닥임=학내 자살 사건 발생 후 모방 자살을 막기 위해 서울시 소아청소년정신보건센터(02-3444-9934)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 학교가 신고하면 ‘ 위기관리팀’을 구성하고 자살 예방 및 위기 관리 교육 등을 실시한다.

학교 자살 사건 때 응급 조치

① 119 신고·병원 후송, 해당 교육청과 경찰에 연락

② 학부모·보호자에게 연락하되 교장·교감 등 학교 대표자가 면담

③ 수업 등 학사 일정의 무리한 진행은 금물. 단, 학생은 귀가 조치 대신 교실에서 담임교사가 보호

④ 사실과 다른 소문이 퍼지지 않도록 사건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

⑤ 자살 원인·방법 등은 언급 금물

자료 : 서울시 소아청소년정신보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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