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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자극이 큰 유행을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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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꾸라지 한마리가 물을 흐린다' 는 속담이 있다. 못된 사람 하나가 온 사회를 망친다는 말인데, 여기서 옳고 그르다거나 좋고 나쁘다는 가치판단을 빼고 곰곰이 다시 한번 들여다보면 지금껏 미처 생각지 못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소수의 힘, 또는 사소한 것의 위력이다.

〈티핑 포인트〉는 바로 이 '미꾸라지 효과' 를 고찰한 책이다. 맑은 웅덩이가 한 무리도 아닌 단 한 마리의 미꾸라지에 의해 갑자기 흐려지듯, 예기치 못한 사회의 갑작스런 변화 역시 실은 아주 작은 데서 출발한다는 주장이다.

나이키의 에어 조던 운동화나 프라다의 검정 백, 포켓몬스터, 해리 포터 시리즈 등 소위 '떴다' 는 갖가지 유행들이나 느닷없이 극적으로 늘었다 줄어드는 자살률.범죄율 같은 주목할 만한 사회현상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어떤 사소한 사건이 계기가 돼 전 사회적 현상으로 폭발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사회적 전염' 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모든 전염에는 발병하는 한계점, 즉 티핑 포인트가 있다고 말한다.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란 역학(疫學)에서 따온 말로 바이러스가 병을 일으킬 만큼의 수에 다다르는 순간을 가리킨다.

물이라면 99℃와 격렬하게 끓어오르는 100℃의 차이, 불과 1℃가 빚어내는 이 극적인 변화의 순간이 바로 티핑 포인트인 셈이다.

워싱턴포스트 기자를 거쳐 뉴요커지에 과학 관련 기사를 기고하는 저자는 에이즈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 모든 사회현상을 티핑 포인트라는 맥락으로 볼 수 있는지를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그 결과 모든 현상은 다 티핑 포인트를 갖고 있고, 티핑 포인트에 오르기 위해선 몇가지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저자는 그 규칙을 '소수의 법칙' '고착성 요소' '상황의 힘' 으로 정리했다.

예를 들어 각기 다른 지역에 사는 두 사람이 똑같이 최초로 감기에 걸렸다고 가정해 보자. 한 사람은 혼자 집에 틀어박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고 다른 사람은 관객이 꽉꽉 들어찬 영화관에 가서 실컷 기침을 해댄다.

다음날 두 지역 감기 환자 수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게 바로 '소수의 법칙' 이다.

발이 넓은 몇몇 사람(커넥터)이나 자신이 획득한 정보를 남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어하는 사람(메이븐.지식을 축적한 자), 미심쩍어하는 이들을 설득하는 세일즈 맨 같은 몇몇 소수들이 나서서 항상 일을 만든다.

자살, 특히 그 사회에서 영향력이 있거나 매력적인 인물의 자살에 관한 기사가 실린 직후 자살률이 껑충 뛰었다는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의 연구나, 일반인이 속옷을 겉옷 삼아 입으면 정신병자 취급받지만 마돈나가 하면 유행이 되는 현상 등은 소수의 중요성을 말해 주는 예.

'소수의 법칙' 이 전염의 핵심적 요소를 메신저의 성격에서 찾았다면 '고착성 요소' 는 메시지가 무엇을 담고 있느냐 하는 아이디어의 중요성을 말해 준다.

메신저가 아무리 지껄인다 해도 듣는 사람이 기억하지 못한다면 전염은 되지 않는다.

저자는 미국의 TV 어린이 학습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는 TV가 어떻게 고착성을 발휘할 수 있는지 알아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셋째 법칙인 '상황의 힘' 이다.

1980년대 최악의 범죄율을 기록하던 뉴욕시에서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범죄가 수그러들었다.

90년대 살인은 3분의2 수준으로 떨어졌고, 지하철 강력 범죄는 75%나 줄어 가장 안전한 도시가 됐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저자는 '범죄는 무질서의 결과' 라는 범죄학자 제임스 휠슨과 조지 켈링의 '깨진 창문 이론' 으로 이를 설명한다.

뉴욕 경찰이 지하철 낙서와 무임승차를 철저하게 막은 것이 범죄율 감소로 이어졌다고 한다.

외형상 사소한 생활범죄가 심각한 범죄를 불러일으키는 티핑 포인트였던 셈이다.

"아주 작은 자극으로 발병해 짧은 기간에 급속도로 퍼지는 사회적 전염병이 어떻게 시작하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는 저자의 말처럼 결국 이 티핑 포인트를 살짝 건드려 주기만 해도 기대 이상의 극적인 효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논점이다.

소위 고질병이라는 우리의 사회문제들도 어쩌면 아주 쉬운 데 그 해답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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