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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와 10시간] 배두나

중앙일보

입력

배두나(사진.21). 머슴애 같은 중성적 이미지의 n세대 선두주자. 최고 무기는 독특한 외모. 1m71㎝의 껑충한 키에 축 늘어진 긴 팔, 여기에 무표정한 얼굴과 초점 없는 시선이 겹치면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눈도 코도 큼직큼직. '조각' '인형'과 거리가 멀다. 심하게 표현하면 '자유민주주의형'. 그만큼 자연스럽다는 얘기도 된다. 천연의 마력?

#1 우상

배두나를 풀려면 팬들부터 해독해야 한다. 스타란 팬들 대리만족의 교집합이니까. 2년 전 거리에서 패션 캐털로그 모델로 뽑힌 이후 단숨에 10대를 빨아들인 그이기에 더욱 그렇다. 자생 인터넷 홈페이지 10여개에 팬클럽 숫자만 2천여명이다.

14일 정오 서울 대학로 극장. 그와의 만남은 팬클럽에서 시작됐다. 열성팬 1백50여명이 좌석을 채웠다. 그와 얼굴을 맞대기로 약속한 것. 그러나 비보(?). 10월 중순 개봉할 영화〈청춘〉촬영이 밀려 참석할 수 없다는 소식에 모두 술렁인다.

그것도 잠시. 남양주 서울종합촬영소까지 버스로 데려다 준다는 말에 이내 환해진다. 촬영소에서도 두 시간이나 기다렸으나 별 불평이 없다. 어른들로선 이해하기 힘든 풍경. 그가 나타나자 환호와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팬클럽 회장 한은미양의 생각. "두나 언니는 당당해요. 털털하지만 자신감 넘쳐요. 요즘애들은 이쁜 척 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거든요. 닭살이죠." 둘러보니 팬의 80%가 여학생. 아무리 n세대라도 가정·학교에서 기를 다 펴지 못하는 여학생의 아우성처럼 다가왔다.

드라마〈학교〉〈광끼〉를 거쳐 최근〈RNA〉까지 아웃사이더의 반항과 자유를 표출해온 그의 이미지가 주효한 것. 경제적으론 90년대 중반부터 소비문화의 주체로 나선 10대의 든든한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2 세상

배두나는 영리하다. 인기의 덧없음을 깨달은 눈치다. 그의 강력한 응원군이 10대임을 인정하지만, 그들에게 기대선 더 이상의 성장을 약속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제 이미지는 만들어진 것이죠. 온전히 제 성격이라고 할 수 없어요. 겉으론 발랄하고 수수하지만 외로움도 많이 타고 대범하지 못해요. 고등학생 때도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어요."

그는 "이제야 사춘기가 온 것 같다"고 쑥스러워 한다. 촬영이 없는 날의 허전함,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 않는 안절부절함,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싶은 마음 등. 연극배우 출신인 어머니 김화영씨가 안타깝게 바라본다.

"글쎄 얘가 며칠 전 심야에 자기 방에서 내 방으로 전화를 하지 않았겠어요. 전화를 걸 사람이 없다나요. "

화려한 스타의 감춰진 내면이다. 스물이 넘었으니 조숙하다고 판단할 필요까진 없으나 뜻밖의 쓸쓸한 고백이 순간 당혹스럽다.

그러나 나이는 속이지 못하는 법. NG가 계속나자 '청춘'의 상대역인 김래원·정현과 깔깔대며 자지러진다. "그런데 정현 오빠, 어떻게 발등에 털이 났어" 라며 엉뚱한 질문도 한다. 꺾어 신은 운동화, 찢어진 청바지가 영락 없는 요즘 애다.

#3 비상

배두나가 n세대의 보호벽을 뚫고 세상 속으로 외출한다. 비유컨대 기성체제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 젊음의 반항기를 다소 죽이고 성인 배우로 거듭난다. 야생마에서 경주마로 조련되고 있다.

그 시금석이〈청춘〉. 드라마를 포함해 처음 도전하는 멜로물이다. 연락이 끊긴 연인(김래원)을 원망하면서도 자기를 잃지 않으려는 장면을 열 네 번이나 찍으면서도 트레이드 마크인 커다란 눈에 긴장을 풀지 않는다. 노출 신도 간간이 섞여 부담이 크다.

"영화 찍을 땐 아무 것도 못 먹어요. 오늘도 하루 종일 굶었어요. 배가 부르면 나태해지거든요." 이미지로 승부하는 미니시리즈에서 연기로 결판나는 일일극으로의 진입 또한 모험이다. 9월 중순 SBS 일일극〈자꾸만 보고 싶네〉에 출연한다.

"10대팬을 생각하면 못할 작품입니다. 그러나 어차피 해야 할 일…. 잘 나갈 때 실력을 키워야죠. CF도 하나로 줄였어요. " 유비무환파다.

곽감독이 다그친다. "겉보기와 달리 성격이 아기 같다. 카메라 앞에 버티고 설 뱃심을 길러라." 그러면서도 "자세가 진지하고 성실해 싹이 보인다"고 다독거린다.

두나(斗娜.아름다운 별)는 지금 칼날 위에 선 상태. 반짝 스타로 잊혀질 것인가, 아니면 영원한 샛별로 남을 것인가. 이름값을 채우는 노력이 유일한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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