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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황금과 권력을 향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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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의 '라인의 황금'…게르만신화 소재로 한 대작 '니벨룽겐의 반지'의 전야극

그리스 신화의 주신(主神)
은 제우스지만 게르만족의 신화에 등장하는 주신은 보탄(Wotan)
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그런데 유럽 본토에서도 제우스에 비해 별로 인기가 없던 이 애꾸눈 보탄은 19세기에 오페라 주인공이 되면서 비로소 세계인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베르디와 함께 19세기 오페라의 양대 산맥을 이룬 독일의 리하르트 바그너가 게르만 신화를 소재로 직접 대본을 써서 ‘니벨룽겐의 반지 (Der Ring des Nibelungen)
’라는 대작(大作)
을 작곡한 것이다.

바그너의 작품 공연을 위해 특별히 지어진 독일 바이로이트의 전용 페스티벌 극장에서는 전야극을 포함해 모두 4부로 이루어진 이 ‘니벨룽겐의 반지’와 다른 바그너 오페라들을 매년 여름에 공연하는데,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지루할 수 있는 이 공연들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세계 각국에서 엄청난 관객이 몰려 3∼4년 전부터 예매해 두지 않으면 도저히 입장할 수 없을 정도이다.

올해도 며칠에 걸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이 7월 말에 시작되었는데, ‘니벨룽겐의 반지’ 중 전야극인 ‘라인의 황금(Das Rheingold)
’을 연출한 위르겐 플림은 현대적이고 유머러스한 연출로 무겁고 난해한 바그너의 음악을 관객에게 친근하게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1869년에 뮌헨에서 초연된 이 ‘라인의 황금’은 물질과 권력에 대한 인간의 끔찍한 집착을 다루고 있어 일찍이 버나드 쇼가 지적한 대로 ‘현대에도 여전히 그 의미가 유효한 드라마’다.

이야기의 배경은 아득한 신화 시대 독일의 라인강. 눈부시게 아름다운 강의 요정 셋이 물속에서 노닐며 강바닥에 있는 ‘라인의 황금’을 지키고 있다. 그때 니벨룽겐(난쟁이 부족의 이름)
가운데 유난히 탐욕스러운 알베리히가 나타나 요정 처녀들을 잡으려고 쫓아다니다 실패하고는 강바닥의 황금에 눈을 돌린다. 사랑을 영원히 포기하는 자만이 그 황금으로 반지를 만들 수 있으며 일단 그 반지를 소유하게 되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알베리히는 황금을 훔쳐 달아난다.

한편 보탄은 신들이 거주할 근사한 성을 지을 욕심에, 영원한 젊음의 여신 프라이아를 보수로 내 주기로 하고 두 거인(巨人)
에게 이 일을 맡긴다. 하지만 프라이아를 잃으면 신들은 영원한 젊음을 유지할 수 없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

그래서 보탄은 알베리히가 훔쳐간 황금을 빼앗아다가 프라이아 대신 거인들에게 주려고 꾀많은 불의 신 로게를 불러 지하 세계로 내려간다. 로게의 꾀를 빌려 알베리히를 지상으로 붙잡아온 보탄은 황금과 요술 투구를 빼앗고 반지마저 빼내 자기가 낀다.

그러나 거인들은 그 모든 보물을 받아야 프라이아를 포기하겠다고 떼를 써 결국 반지까지 가져가는데, 알베리히가 반지에 건 저주로 인해 흉포해진 거인들은 서로 보물을 독점하려고 싸우다 한 거인이 다른 거인을 때려 죽이기까지 한다. 보탄과 신들이 무지개 다리를 타고 새로 지은 발할라 성에 입성하는 것으로 이 ‘라인의 황금’은 끝을 맺는다.

이 작품에 나타난 ‘황금과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 그리고 ‘정치권력의 속성’을 오늘날의 현실에 합당하게 해석하기 위해 올해 바이로이트 무대는 재미있는 시도를 했다.

남성들의 영원한 욕망의 대상, 그리고 상품화된 성(性)
을 상징하기 위해 강물의 요정들은 미인 대회에서처럼 똑같은 수영복을 입고 등장한다. 그리고 잘난 외모도 돈도 권력도 없는 ‘못 가진 자’의 상징 알베리히는 누가 봐도 영락없는 노숙자 차림을 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에서 ‘풍요의 시대’가 끝났음을 보여 주려는 듯, 보탄과 그의 아내는 빈 술병이 가득한 초라한 아틀리에에 쭈그리고 앉은 모습이다. 바그너 오페라의 남성적이고 영웅적인 매력에 반해 있던 과거의 음악팬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진척되어 온 바이로이트의 이런 변화에 실망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바그너의 독재적인 신화가 민주사회에 걸맞은 방식으로 세속화되는 이러한 발전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용숙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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